美 1위 리튬업체도 현지공장 다수···"단기간 내 脫中은 힘들 듯"
◆ 中과 얽히고설킨 배터리공급망
한중 JV 등 제재 대상 포함땐
K배터리 광물 밸류체인 흔들
포드도 CATL과 합작법인 추진
中 영향력 완전히 배제 어려워
"고강도 규제 쉽지 않아" 전망도
미국 행정부가 앞으로 공개할 해외우려단체(FEOC)의 범위에 배터리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지금까지 쌓아온 배터리 밸류체인을 통째로 뒤흔들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국내 배터리 셀사와 소재 회사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배터리 핵심 광물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가공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전구체와 양극재 생산 공장을 국내에 짓는 전략을 펴왔다. 중국과 같은 비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광물을 조달해도 FTA 체결국인 한국에서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IRA의 보조금 적용 대상으로 인정해주는 조건을 활용한 것이다.
‘배터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양극재의 중간 소재인 전구체는 양극재 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 지난달 말 공개된 IRA 배터리 세부 지침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사실상 광물로 분류되면서 K배터리사는 한숨을 돌렸다. 배터리 생산의 밸류체인에서 양극재와 음극재의 생산을 장악하면 적어도 배터리 광물 규정 때문에 IRA의 전기차 보조금을 못 받는 상황은 사라진다고 판단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IRA 세부 지침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부품으로 정의되지 않으면서 우리 업체들이 광물 비율을 충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FEOC의 범위다. 미국 정부가 FEOC에 중국 기업을 상당수 포함시키거나 한중 조인트벤처(JV)를 걸고 넘어질 경우 K배터리사들의 광물 밸류체인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말 발표한 IRA 백서에서 중국·러시아·이란 등을 FEOC로 지정했지만 구체적인 적용 범위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이 반도체법처럼 중국이 25%의 직·간접적 의결권만 갖고 있더라도 해당 기업을 FEOC로 분류할 경우 국내 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신정훈 김앤장법률사무소 외국 변호사는 “FEOC의 범위와 규제 강도가 어떻게 나올지 업계도, 정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IRA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데 있다고 보면 최악의 상황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폭증하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국 기업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광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중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언제 나올지 모를 FEOC의 가이드라인만 천수답처럼 바라봐서는 늘어나는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공급 요구를 맞출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SK온과 에코프로가 중국의 거린메이(GEM)와 새만금단지에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짓는 것도, LG화학이 중국 화유코발트와 같은 단지에 전구체 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광물 및 소재 공급망이 글로벌 배터리사는 물론 완성차 업체들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미국도 강한 규제안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중국의 배터리 기업인 엔비전AESC는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독일의 BMW·메르스데스벤츠사에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또다른 배터리 업체인 궈시안은 미국 미시간주에 양극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텐치리튬은 칠레의 글로벌 리튬 회사인 SQM의 2대 주주다. 미국 업체들도 중국 배터리 회사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미국의 세계 1위 리튬 업체인 앨버마는 중국에 다수의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CATL은 미국 포드와 기술 합작 방식으로 테네시주에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FEOC 발표가 늦어지는 것은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 뻗쳐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FEOC에서 한중 합작법인과 같은 방식까지 포함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FEOC에 합작법인이 포함돼도 구체적인 지분율에 따라 규제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기업을 다수 포함시키더라도 기업 유형에 따라 유예 기간을 둘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반도체법처럼 강한 규제안을 내놓을지,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의 현실을 고려해 좀 더 완화된 형태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과 교수도 “IRA의 본질은 탈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배터리 굴기”라면서 “미국은 배터리 후진국이기 때문에 산업 부흥을 위해서는 중국과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유창욱 기자 woogi@sedaily.com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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