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이곳에선 잠시 길을 잃어도 좋겠다… 관람료 5만 원, 이 숲의 정체는?

최흥수 2023. 4. 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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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보려면 최소 4시간, 군위 사유원
15년간 준비를 거쳐 2021년 개장한 군위 사유원. 숲속에 여러 건물이 있지만, 공중에서 봐도 전망대인 소대와 소요헌 2개 건물만 파악된다.

상주영천고속도로를 달리다 군위 끝자락을 지날 때쯤 왼쪽 산기슭에 잠망경처럼 불쑥 솟아 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이태 전 개장한 수목원 ‘사유원’ 전망대다. 편의상 수목원이라 부르지만 두 개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거대한 숲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이용료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관람료만 5만 원, 특선 식사가 포함된 주말 디너는 최고 26만9,000원이다. 지난 14일 사유원을 찾았다. 약 4시간에 걸쳐 7km를 걸었다.

입구에서 예약 확인을 마치면 간단한 안내 책자와 함께 GPS가 장착된 목걸이를 받는다. 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사유원(思惟園)의 명칭은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따왔다. 은은한 미소에 오른손을 턱에 살짝 걸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은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이라 해석한다. 사유원 안내서는 이곳을 차 있는 것을 덜어낸 허정의 공간이며, 침묵해야 할 고요의 소리가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사유원 입구에 반가사유상 사진이 걸려 있다.
사유원 초입은 일반 수목원처럼 평범하다.
사유원의 작은 전망대 '금오유현대'.

한껏 기대가 커지는데, 첫인상은 의외로 평범하다. 야자매트가 깔린 산책로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가지런히 다듬은 자연 솔숲을 통과해 언덕에 다다르면 콘크리트와 철재로 만든 돌출형 전망대가 나타난다. 아래로 보이는 산자락 풍광은 소박하다. 천천히 오르며 연못가 벤치에서 쉬기도 하고 제멋대로 피어난 철쭉에도 눈길을 준다. 일단 호사스럽게 꽃구경하는 곳은 아니다.

전망대에서 뒤로 돌자 반전의 풍광이 펼쳐진다. 커다란 배롱나무 수십 그루가 고목처럼 늘어서 있고, 바로 옆으로 모과나무 정원이 이어진다. 설립자인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평생 수집한 수령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식재된 곳이다. 막 피어나는 분홍빛 꽃송이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데, 꽃보다 눈길을 잡는 건 나무줄기다. 쪼개지고 부러지고 긁히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그 풍상의 이력이 강인하고 고결하다. 이 정원의 명칭은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다. 정원 위쪽에 팔공청향대(八公淸響臺)라는 전망대 겸 쉼터가 있다. 팔공산의 청정한 울림을 듣는 곳이라는 의미다. 우람한 팔공산 능선이 모과 정원을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사유원의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
사유원의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
모과나무 정원에는 수령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심겨 있다. 풍상의 세월을 견딘 강인함이 느껴진다.

전망대에서 맞은편 산기슭으로 내려가면 느티나무 정원인 한유시경(閑遊詩境), 생태 연못인 사담(思潭)으로 이어진다. 한가로이 숲을 거닐다 보면 시인의 경지에 이른다는 곳이다. 연초록 느티나무 잎사귀가 수면에 비친 모습이 마치 선경인 것 같다. 미동도 없을 것 같은 연못에 바람이 일고, 때로 동심원이 그려진다. 하염없이 응시하게 되는 사색의 공간이다.

수목원 전체 면적은 32만m²(약 10만 평),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안내도만 보고 목적지를 바로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길은 여러 갈래이고 봐야 할 곳은 아직 많이 남았다. 때로 헤매고 왔던 길을 되짚기도 했다. 그 과정이 싫지 않다. 이곳에선 잠시 길을 잃어도 좋겠다.

사유원 사담에 연둣빛 느티나무가 비친다. 건너편 타워는 새들을 위한 공간이다.
사유원 생태연못 '사담'에 '한유시경' 느티나무 이파리가 비치고 있다.
사유원의 작은 성당 '내심낙원'.
사유원의 사색의 공간 '명정'.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이다.
사유원의 대표 건축물 '명정' 내부.
사유헌의 대표 건축물 소요헌 내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사유원에는 자연을 풍경으로 삼은 화장실이 곳곳에 있다.

사담 건너편 산자락에는 한국정원인 ‘유원’과 작은 성당인 ‘내심낙원’, 카페 ‘가가빈빈’ 등 여러 시설이 위치한다. 힘에 부치더라도 꼭 봐야 할 곳을 꼽는다면 승효상 건축가의 대표작 명정(暝庭),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逍遙軒)이다. 명정은 영생을 생각하는 공간이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진 내부 벽면에 맑은 물이 흐르고, 붉은 피 안의 세계가 얕은 수면에 반사된다. 무심하게 한참을 머물러도 좋을 곳이다. 소요헌은 장자의 철학에서 빌린 이름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내부를 거닐다 보면 길은 닫혔다 열리고, 막혔다 연결된다.

숲길 곳곳에 독락사(獨樂舍), 세욕소(洗慾所), 망우정(忘憂亭) 등의 명패를 단 작은 건물이 보인다. 문도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면 세면대와 재래식 변기가 놓여 있다. 앞은 훤하게 트여 화장실 전망이 바로 자연이다.

사유원은 2021년 개원하기까지 15년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풀과 나무가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자연의 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그래서 모든 시설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시각적 자극에 미혹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사색하는 곳이다. 두세 명이 동행하면 적당하고, 혼자면 더욱 좋겠다.

사유원의 전망대인 소대. 건물이 15도 기울어져 있다.
사유원 전망대 소대에서 관람객이 바로 아래 장평저수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유원은 2개 산등성이에 걸쳐 있다.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최소 4시간은 걸린다.

미학적, 철학적 가치를 차치하고라도 사유원은 규모나 시설에서 지금까지 다녀 본 사설 정원 중 최상급이었다. 5만 원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는 말이다. 단 한계효용의 법칙에 얽매인다면 불만일 수 있겠다. 관람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거나, 자연이 주는 소소한 지혜에 감동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분명 본전 생각이 날 듯하다.

군위=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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