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후보추천위’라는 민주당의 코미디 [아침햇발]
[아침햇발]
강희철 | 논설위원
대법원은 힘이 세다. 4년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적 운명’을 가른 것은 말 3필과 대법원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2019년 8월 이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깼다. 난다 긴다 하는 초호화 변호인단도 별 소용이 없었다. 파기환송 자체보다 ‘이유’가 이 회장과 삼성을 멘붕에 빠뜨렸다. 34억원쯤 되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말 3필이 뇌물로 간주되면서 횡령 총액이 크게 늘었다. 집행유예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 회장은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전합 취지대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적 운명’을 바꾼 것도 대법원이다. 2020년 7월 전합은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의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깼다.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이 대표 부부가 예정에 없던 노래방까지 같이 가서 얼마나 좋아하던지.”(변호인단의 한 사람) 대법원이 정치인 이재명을 살렸다.
강렬한 ‘기사회생의 추억’ 때문일까. 민주당이 얼마 전 묘한 법률 개정안을 냈다.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를 대법원에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헌법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4조)고 돼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추천위가 뽑은 후보 ‘3인 이상’ 중에서 1명을 지명하도록 임명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법안 요지다. 입법이 된다면 오는 9월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 인선부터 적용된다.
곧 물러날 김 대법원장이 추천위원 11명 중 7명을 골라, 사실상 후임 대법원장 후보군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고 여러 언론이 썼다. 위헌 논란도 불가피하다.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추천위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민주당 집권기에 도입할 수 있었다. 야당이 반대했을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6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점찍은 전수안 전 대법관에게 먼저 간곡한 청을 넣었다. 그러고도 승낙을 얻는 데 실패하자 플랜비(B)로 박시환 전 대법관을 지목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 혹은 비서실장일 때부터 자신과 성향이 맞는 두 사람을 잘 알았다. 박 전 대법관은 노 대통령 탄핵 사건 변호인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각별한 지시를 받은 청와대 ㄱ비서관이 서울 청계산 인근 음식점으로 박 전 대법관을 불러내 한나절 넘게 읍소하고 압박하며 설득한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그러고도 뜻대로 되지 않아 ‘3순위’로 지명한 사람이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던 김명수 전 우리법연구회장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만들어 뿌린 ‘이재명 정책공약집’에도 추천위는 들어 있지 않다. ‘나’의 임명권과 ‘남’의 임명권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극과 극인 경우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라고 부른다. 윤 대통령이 지명할 대법원장 후보자가 마음에 안 들면 청문회에서 따지고 투표로 부결시키면 된다. 민주당은 그럴 권리와 넘치는 의석을 가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가 부결한 선례가 있어, 정치적 부담이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추천위 입법을 들고나온 것일까.
서초동과 정치권 일부에선 3~4개월 뒤쯤 가시화될 차기 대법원장 후보군 이름이 돌고 있다. ㅇ헌재 재판관, ㅇ대법관, ㅇ고법부장 등인데, 하나같이 윤 대통령이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그들 아닌 대법원장을 바라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이미 기소됐거나 앞으로 기소될 이재명 대표, 노웅래 의원 그리고 ‘전대 돈봉투’ 사건의 민주당 의원들까지 결국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돼 있다. 차기 대법원장 임기와 겹친다. 그 대법원장은 전합을 구성하는 대법관 13명 중 9명의 임명제청권을 행사하게 된다. 물론 전합 재판장도 맡는다. 그래서 민주당의 추천위 카드는 ‘이해충돌’ 의심과 무관할 수 없다. 발의자의 면면에서도 민주당의 의도가 배어난다. 44명에 이 대표는 들어 있지 않지만, 정성호, 박찬대, 김성환, 박홍근, 진성준, 천준호, 장경태 의원 등 ‘친명’ 실세와 지도부가 즐비하다.
여당 반대로 입법이 불발돼도 민주당은 손해 볼 일이 없다. 영문을 모르는 국민들 눈엔 윤 대통령의 또 다른 몽니로 비칠 테니.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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