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일파만파`] 까다로운 대출·긴급 주거지원… `보증금 반환` 빠진 대책 분노

이미연 입력 2023. 4. 18. 16:54 수정 2023. 4.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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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는 '전세사기 대책'
미추홀구 경매·공매 1066세대
낙찰시 강제퇴거로 거주지 증발
수도권·부산·제주로 피해 확산
피해자 우선 매수 등 뒷북 검토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 쓰레기봉투 안에 수도 요금 독촉장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세사기 수사 중'…피해 사망자 거주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정부 대책은 절망스러운 수준이다.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예방책에 불과해 현 피해자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대출이나 긴급주거 지원책도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사실상 피해자들이 받기가 어렵다."(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빌라왕·건축왕 등 작년 말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 관련 피해의 늪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들인 20∼30대 3명이 최근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며 청년층의 절망 수위가 높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고 사망 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이들은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대책'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는 피해지역도 광범위하다. 수도권을 넘어 부산·광주·제주 등 전국으로 늘어나고 있고, 피해구제는 개인이 소송이나 경매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 피해자들과 피해금액은 점점 증가추세다.

◇피해주택 10채 중 6채, 이미 경매·공매 넘어가=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를 당한 집이 경매·공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경매 진행으로 낙찰되면 강제퇴거가 불가피해 하루아침에 거주할 곳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주택이 감정가의 절반 정도인 저가에 낙찰되는 것도 문제다.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데다 세입자가 끼어 있어 권리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유찰을 거듭하다가 결국 감정가의 반값 이하로 낙찰되기 때문. 낙찰 금액이 낮아 국세나 선순위 근저당권자에 배당 후 세입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속출할 전망이다.

18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으로 대책위에 가입된 34개 아파트·빌라의 1787세대 가운데 경매·공매에 넘어간 세대는 1066세대(59.6%)로 전체 세대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10채 중 6채는 경매 등이 진행 중인 것.

이 중 106세대는 이미 낙찰됐고, 261세대는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18일 국토교통부 간담회에서 공개된 미추홀구의 경매 피해 세대는 19개, 아파트의 651세대로 당시 경매에 낙찰돼 매각된 집은 6세대(0.9%) 뿐이었는데 급격히 불어난 것이다.

대책위 측은 대책위 미가입자까지 고려하면 전체 피해세대 3079세대 중 2083세대(67.6%)가 경매에 넘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무작위로 431세대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132세대(30.6%)는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보장받는 최우선변제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아 피해가 더욱 커질 우려도 나온다.

그나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 17일 인천본부가 관리 중인 미추홀구 주택 경매 210건 가운데 51건의 매각기일을 변경을 신청했다. 채권자 권리 제한이 어려워 경매 취하 또는 중단은 불가능하지만, 임차인이 정부 지원책으로 대출을 받거나 임시 거주할 곳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여러 번 내놨어도 허점 투성이 '전세사기 방지대책'=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대책들을 내놨지만, 현실성이 부족하고 2차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2월 발표된 범정부 차원의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에는 전세가율 조정과 경매를 통한 주택 매입, 임대인 신용정보 공개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터라 경매 중단 등의 방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어 3월 말 정부가 '내수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라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을 포함시켜 정부가 이 문제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거셌다.

여러 번의 대책 발표에도 피해자들의 사망 사건이 이어지며 논란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피해 주택의 경매 일정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해당 방안을 시행하라는 지시와 함께 몰라서 지원을 못받는 경우가 없도록 '찾아가는 서비스 시스템 구축'도 당부했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 명령으로 법원 경매를 중단시킬 수 있는 근거가 없는 터라, 어떤 방안이 보고됐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잇따른 대책들은 △전세가율 법적 상한제 △감정평가와 보증보험 의무화 △임대인 대출·체납 의무공개 등으로 실질적인 피해방지 방안들이 빠지면서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대책 발표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져 근본적인 피해자 구제와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방안 중 하나로 피해자들이 직접 주택을 낙찰받는 방안을 내놨다. 피해자가 낙찰을 받더라도 무주택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디딤돌 대출을 지원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경매업자들이 주택을 낙찰받아 피해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나오면서 경매절차를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 대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면서 2차 피해 우려도 커졌다. 경매 이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로, 임차인보다 앞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있다는 의미다. 결국 정부가 경매절차를 중단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와 함께 금융권과 일반 채권자까지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정부가 경매대책을 내놨을 당시부터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주택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결국 '눈앞의 불'을 끄는데 급급해 궁극적인 피해자 구제인 '보증금 반환'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것이다.

또 지난 2월 대책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없이도 신용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개선한다고 밝혔지만, 계약을 체결한 뒤에야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부분이 큰 한계다. 또 보증금 반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출관련 내용은 공개 내역에서 빠져 실효성이 없어졌다.◇"정부 강력 개입해야"= 전문가들은 더욱 강력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호가로 결정되는 전세가격의 상한선을 정부가 정한다면 사기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부동산 상승기 일부 지역 빌라 전세가율이 90%를 상회하는 등 시세 변동폭에 따라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능력이 크게 좌우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가 거래를 전담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평가사의 역할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또 현재 주변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에 의존하고 있지만 가격 변동률이 가파른 시기나 지역, 주택유형에 대해서는 감정평가사가 계약 건마다 적정가격을 평가하도록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피해자가 전세 물건을 우선 매수하거나, 정부가 경매로 넘어간 주택을 직접 매입해 세입자의 주거안전성을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지금 정부가 내놓은 경매대책이나 공인중개사 처벌 강화 등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며 "전세가율 상한을 60~70% 선으로 정하면 가격 변동에 따른 피해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참여연대를 비롯한 65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발족한 '전세 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임차인이 가진 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매수해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매수한 보증금 반환채권을 기초로 해당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또한 전셋값 폭등을 막기 위해 전세 보증금을 주택가격의 70% 또는 공시가격의 100% 이하로만 받을 수 있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는 등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도 촉구했다.

이미연·김남석기자 enero20@dt.co.kr /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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