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맛있게 계란을 먹는 뜻은

한겨레 2023. 4. 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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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박성훈의 브루더호프 이야기]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몇주 전만 해도 동장군이 봄을 시샘하듯 눈도 내리고 뉴욕의 봄이 너무나 느리게 오는 것 같아 언제쯤 앙상한 나뭇가지에 푸른 잎이 돋으려나 먼 산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조단 선생님이 5~6학년 남자아이들을 우리 배나무밭에 데리고 와서 거름을 열심히 날라다 줍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고맙다고 하니 자기들은 한국 배를 아주 좋아한다며 열심히 거름을 배나무 주위에 뿌리는 걸 보면서 제 마음도 흐뭇해지면서 올가을 한국 배가 열리면 이 아이들을 제일 먼저 초대해 따게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그 사이 보랏빛 크로코스가 봄 마중을 나은 듯 풀밭 여기저기에 카펫을 깔듯 수놓더니 지난주에는 갑자기 온도가 화씨 90도까지 올라가 갑자기 이곳 메이폴릿지도 드디어 싱그러운 연둣빛 세상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주일인 지난주 일요일만 해도 꽃이 그리 많이 피지 않았는데 일주일 사이에 산수유를 선두로 해서 목련, 벚꽃, 복사꽃 등 여기저기 화사한 꽃들을 보며 제 마음에도 봄이 온 듯합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거름을 준 우리 배나무도 일주일 사이에 하얀 꽃으로 가득해 나무마다 가득히 달릴 배를 상상해 보며 예쁜 배꽃들을 즐깁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앙상하고 황량하기만 하던 온 세상에 새 생명이 움터나는 부활절이 오면 이곳 메이플릿지는 집집이 예쁜 계란을 장식합니다. 계란은 새 생명을 상징하는데 부활절 계란 장식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백 년 전, 교회에서는 사순절 동안 회중이 계란을 먹는 것을 금해 고행과 금식 기간의 끝을 표시하기 위해 부활절에 계란을 칠하고 장식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흘리신 피를 상징하기 위해 계란을 붉은색으로 염색하였고, 유럽 각 나라의 계란 장식은 더욱 정교해지고 화려해져서 계란이 종종 선물로 주어지면서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독일에서는 예쁘게 꾸민 계란을 부활절 식사를 위한 테이블과 나뭇가지를 장식하는 데 사용하는데 저희 공동체에서도 부활절이 오면 독일의 전통에 따라 집이나 공동체 곳곳에 예쁘게 꾸며진 계란을 장식합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학교 앞 나무에 색색 계란으로 열심히 장식하는 것이 참 귀엽습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제 아내도 하빈이와 유빈이가 마블링으로 염색해 놓은 계란을 꺼내 수선화와 함께 꽃병에 꽂고 벽 한쪽 코너에는 버드나무가지를 꽂아 아이들이 만든 계란 달걀을 겁니다. 하빈이의 생일이 부활절 시즌인 4월이라 아내는 매년 하빈이의 생일이면 하빈이 친구 가족을 초대하고 초콜릿을 녹여 차우메이 면을 넣고 나뭇가지처럼 만들어 부활절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둥지를 먹어보니 빼빼로 맛이네요. 맛있고 예쁜 둥지위에 초콜릿으로 만든 조그마한 부활절 계란을 넣어 저녁 식사 접시를 장식하곤 했습니다. 올해는 하빈이가 독립해 집에 없자 아내는 하빈이를 기억하며 부활절에 초콜릿 둥지를 만들어 매일 아침 예쁜 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엘리네 가족과 우리 강아지를 잘 돌봐주는 제시카 가족을 위해 만들어 주니 모두 좋아합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이렇게 꽃이 피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부활절 시즌이 되면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아이들이 기다리던 ‘부활절 토끼(Easter bunny)’가 오는 날입니다. 부활절 토끼가 오면 ‘부활절 계란 찾기(Easter egg hunting)’가 시작됩니다.

한국에서 부활절이 되면 교회에서 색색가지 염색된 부활절 계란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부활절 토끼는 미국에 와서 처음 들었습니다. 부활절 토끼는 서구 기독교 부활절 명절의 두드러진 상징이 되었는데 17세기 독일의 글에서 처음으로 부활절 토끼를 묘사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부활절 토끼는 알록달록한 알을 낳아 부활절날 아침에 바구니에 담아 착한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부활절 둥지에 배달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토끼가 뛰어다니다 배가 고파질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이 만든 부활절 둥지 옆에 종종 당근을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활절 계란 찾기는 16세기 독일에서 부활절 전통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회중을 위해 교회에서 계란 찾기를 했고, 그곳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들이 교회 주변에 숨겨둔 계란을 찾았습니다. 이 관습은 부활 후에 무덤이 비어 있던 것을 발견한 여인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후 독일에서는 부활절 토끼가 모든 착한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밝은색 계란 바구니를 가져와서 아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집과 잔디밭 주변에 부활절 계란을 숨기는 전통이 내려오게 되었고, 이 부활절 전통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가 켄싱턴 궁전 곳곳에 부활절 계란을 숨긴 덕분에 영국에서 인기를 끌자 성인이 된 빅토리아 여왕은 부활절 전 목요일에 아이들을 위해 계란을 숨기는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사진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독일의 부활절 토끼는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한 독일 이민자들과 함께 1700년대에 미국에 도입됐으며 이 관습은 미국 전역에 퍼졌고 둥지 대신 장식 바구니로 대체되면서 초콜릿과 다른 사탕류도 넣었습니다. 이제 부활절 계란 찾기는 산타클로스처럼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종교적 관습보다는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부활절 계란도 처음에는 삶은 계란에 장식하였지만 1850년대에 인공 계란이 런던에서 인기를 끌게 되고 19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초콜릿 계란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부활절 시즌에 슈퍼마켓에 가면 계란이나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진열대에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저희 공동체에서도 해마다 부활절이 끝나면 햇볕이 따사로운 날 아이들을 위해 ‘부활절 계란 찾기’를 여는데 드디어 오늘 본격적으로 ‘부활절 계란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트랙터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보니 부활절 토끼가 트랙터를 몰고 가자 그 뒤를 아이들이 졸졸졸 따라 달립니다. 부활절 토끼가 풀밭을 지나 저 멀리 사라져 가자 아이들이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는 풀밭으로 옵니다. 드디어 부활절 토끼가 숨겨 놓은 부활절 둥지를 찾는 시간입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아이들이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어른들은 초콜릿 알과 계란처럼 생긴 젤리빈이 가득 담긴 부활절 둥지를 이곳, 저곳 보이지 않는 곳에 숨깁니다. 어린이집의 꼬마들을 위해서는 나무 밑이나, 풀밭 속등 눈에 띄기 쉬운 곳에 숨기고 학교 아이들을 위해선 좀처럼 찾기 힘든 장소를 골라 숨겨둡니다. 유빈이를 위해서는 나무 틈새에 넣어 밖에서 보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에 숨기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부활절 둥지를 찾느라 여기저기 열심히 둘러봅니다. 마치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 가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입니다.

부르더호프공동체 제공

여기저기서 자신의 부활절 둥지를 찾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못 찾은 아이들을 위해 함께 찾아 나섭니다. 토끼 귀 머리띠를 쓴 조그마한 꼬마들이 자신들이 찾은 부활절 초콜릿 계란을 먹고 있는 것이 참 귀엽기만 합니다.

풀밭 가운데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 꼭대기에는 부활절 둥지가 여러 개 숨겨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기상을 높이기 위해 저 높이 올라간 아빠도, 그것을 찾기 위해 기를 쓰고 올라가는 아이들도 참으로 장하고 멋집니다. 모두들 아이들이 나무 타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거워 합니다.

제 아내와 제 이름이 적혀 있는 부활절 둥지는 주변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나무 바로 밑에 당당하게 숨어 있어 아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는데 사실은 나이가 들자 힘들게 찾는 것이 귀찮아 지고 게을러져 제가 슬쩍 찾기 쉬운 곳에 숨겨 놓았습니다. ^^

아이들이 부활절 둥지를 찾는 동안 한쪽 테이블에서는 자매들이 초콜릿으로 장식한 부활절 계란 쿠키가 놓여 있어 쿠키를 먹으며 형제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만끽합니다.

Happy Spring!

글 박성훈 (브루더호프 공동체 소속 미국 메이플릿지 거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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