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한 수원의 ‘리얼 블루’, 이제는 고민의 때가 왔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은 과거 ‘레알 수원’으로 불렸다. 모기업 삼성전자의 막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쓸어모았다. 1995년 12월, 프로축구 아홉번째 구단으로 뒤늦게 출범했지만 수원은 단숨에 K리그를 대표하는 명가로 올라섰다.
수원은 2010년부터 사령탑 선임에 명확한 큰 틀을 하나 세웠다.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한 레전드들에게만 감독을 맡긴 것이었다. 수원식 순혈주의, 이른바 ‘리얼 블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7대 이병근 감독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이제는 리얼 블루에 대한 고민을 할 시점에 놓였다.
수원은 18일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물어 이 감독을 경질하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준 이 감독에게 감사하고, 또한 죄송하다. 당분간 선수단은 최성용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 계획이다. 구단은 위기 극복을 최우선으로 삼아 팀을 본 궤도에 올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은 이번 시즌 개막 후 7경기에서 2무5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최하위로 처졌다. 창단 이래 최대 위기다. 지난 15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선제골을 먼저 넣고도 2-3의 쓰라린 역전패를 당했다. 이에 이 감독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물러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감독까지 물러나면서 수원의 리얼 블루 정책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구단 출신 레전드들을 감독으로 선임해 수원만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간다는 수원의 뜻은 나름 의미가 있다. ‘명가’에 걸맞은 정책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프로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수원은 지금까지 리그 우승 4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2회,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5회를 기록했다. 그런데 리그 우승과 ACL 우승은 전부 초대 사령탑인 김호 감독과 2대 차범근 감독 시절에 나온 것이다.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 속에 검증된 베테랑 지도자가 어우러져 성적을 냈다. 리얼 블루의 시작인 3대 윤성효 감독부터 이 감독까지 수원이 거둔 우승은 FA컵 우승 3회가 전부다.
수원은 구단 레전드를 감독으로 영입한 것을 크게 선전하면서 지원은 감독이 원하는 만큼 해주지 못했다. 성적이 안 나오면 서로가 기분이 상한 상태로 헤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투자와 지원 없는 순혈 감독 선임은 감독 교체 주기만 더 짧아지게 할 뿐이었다. 이임생 감독은 591일, 박건하 감독은 587일, 이병근 감독은 364일 만에 경질 통보를 받았다.
K리그에서 충성도 높기로 유명한 수원 팬들은 레전드들을 마치 ‘방패막이’처럼 대하는 구단에 실망했고, 상처받았다. 뒤늦게 프로에 뛰어든 수원이 너무 빨리 구단 출신들을 사령탑에 선임하면서, 그들이 지도자 경력을 충분히 쌓지 못한 상태로 감독에 부임해 역량 발휘에 있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 감독을 제외한 앞선 4명의 감독(윤성효·서정원·이임생·박건하)은 전부 1부리그 감독 경험 없이 수원 감독으로 부임했다.
수원은 이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며 “구단은 조만간 성적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쇄신안을 수립하여 뼈를 깎는 변화를 꾀하도록 하겠다. 수원이 다시 한번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변치 않는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모기업의 줄어든 지원 속에 레전드 감독에게만 책임을 떠안기는 현재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명가 수원 재건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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