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脫삼성전자 전략 주춤..."중국發 수요 침체 직격"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를 2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삼성전기가 중국발 수요침체 영향으로 탈(脫) 삼성전자 전략이 주춤하고 있다.
18일 삼성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관련 매출 비중은 32.3%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28.6%보다 3.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중국 수요 부진으로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매출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기는 지난 2016년까지 삼성전자 매출 비중이 60%에 육박했다. 삼성전자가 계열사라는 특수성을 떠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업체인 데다 최대 규모의 가전업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전기가 생산하는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상당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과도한 매출 의존이 삼성전기 사업 확장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계속 이어졌다.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편중 현상이 외부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를 높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지난 2020년 3월부터 2021년 말까지 삼성전기를 이끌었던 경계현 사장(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취임 기간 동안 고객 다변화를 내세우며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낮출 것을 공개적으로 거듭 강조했다. 그룹 계열사라 할지라도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신규 고객 확보를 통해 다변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덕분에 삼성전기의 연간 매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곧 44~47%대를 유지하다가 2020년 33.7%로 하락했고, 2021년엔 처음으로 20%대에 진입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 의존도 20% 미만'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평가하며 지난해 매출 비중의 변화를 주목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장덕현 사장 체제에선 오히려 삼성전자의 매출 비중이 늘었다. 전방산업인 IT 시장의 수요 심리 위축으로 삼성전기의 전체 매출이 줄었지만, 삼성전자와의 거래액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기와 삼성전자 간의 거래액은 3조440억원으로 2021년도인 2조7천685억원보다 9%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기의 전체 매출은 9조6천750억원에서 9조4천246억원으로 3% 줄었다.
이는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전기의 주요 거래처 중 한 곳인 중국 샤오미의 부진 여파도 컸다. 스마트폰 시장 불황에 중국의 코로나19(COVID-19)봉쇄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샤오미와의 거래량이 반토막 난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기와 샤오미 간 거래액은 5천451억원으로, 2021년 1조30억원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요 매출처 명단에서도 2021년엔 샤오미가 삼성전자와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선 빠졌다.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된 것도 삼성전기에 타격을 줬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과 비교해 11% 감소한 12억대 미만으로,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S22' 등 스마트폰 플래그십 모델이 선전한 덕분에 삼성전기의 부품을 더 많이 끌어다 썼다. '갤럭시S22' 시리즈는 성능 저하 논란 속에서도 출시 43일 만에 국내 판매 100만 대를 돌파했고, 글로벌 판매도 '갤럭시S21' 보다 20% 넘게 늘어나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삼성전기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카메라모듈 등이 주력 품목으로, 둘 다 스마트폰에 가장 많은 물량을 공급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의 MLCC 매출 40 % 이상이 중국에서 나올 정도로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최근 몇 년 새 주요 고객사로 성장했다"면서도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 봉쇄 조치 등의 영향으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출하량이 20% 이상 빠지면서 삼성전기도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하반기부터 중국에서 다시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되면 삼성전기 MLCC 사업도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매출이 기대만큼 상승할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전기의 의존도도 올해는 좀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 사장이 전장(자동차용 전자장비)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있다는 점도 향후 삼성전자의 매출 비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장 사장은 지난달 15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 이후 취재진을 만나 "이제 삼성전기를 자동차 부품사로 생각해 달라"며 "앞으로 자동차에 카메라와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고부가 기판 탑재 수가 늘어나면서 수요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목 받았다.
또 그는 "전장 부품 시장은 자율주행 기능 적용 등의 영향으로 20~30% 수준의 고성장이 예상된다"며 "삼성전기도 전장 사업 매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역량을 집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2020년과 2022년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MLCC 등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최근에도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현지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삼성전기는 앞으로 부산은 MLCC용 핵심 소재 연구개발 및 생산을 주도하는 '첨단 MLCC 특화 지역'으로 육성하는 한편, 톈진은 전장용 MLCC 주력 생산 거점으로 지속 운영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의 전체 매출에서 전장용 MLCC 비중은 2021년 말 9% 수준이었다"며 "올해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비중은 20%대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지속적으로 완성차 고객사를 늘리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주를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장용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에도 집중하는 한편, 카메라 모듈, MLCC 등의 개발도 지속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삼성전기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적용 가능한 전장용 반도체 기판을 개발했으며 전장용 초소형·초고용량 MLCC 및 전장용 카메라 모듈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전장 시장 성장세가 높다는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전장 시장 규모는 오는 2028년 7천억 달러(약 906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전장용 MLCC는 모바일용 MLCC보다 가격이 10배 넘게 비싸 고부가제품으로써 삼성전기의 영업이익률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며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 고도화 흐름에 맞춰 MLCC 수요도 늘면서 삼성전기가 사업 중심축을 모바일에서 전장으로 수월하게 옮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는 한계가 있지만 자동차 시장은 향후 전기차·자율주행차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전장 부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부분"이라며 "테슬라를 포함한 다양한 자동차 업체와도 협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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