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보다 오래 사는 이유
남편보다 아내가 더 오래 사는 것은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남자는 아내 사별 후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할 위험이 높지만 여자는 오히려 장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남녀의 유전자 차이도 있지만 평소 생활습관-태도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남자는 술-담배 등 나쁜 생활습관이 최대 위험요인이다. 음주운전, 모험을 즐기는 습성 등 위험을 자초하는 것도 남자가 더 많으니 수명이 여자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는 1985년 8.6년까지 크게 벌어졌다가 2020년에 6년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간한 '통계플러스 봄호'에 따르면 2020년의 경우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5.99년으로, 여자가 6년을 더 장수하는 것으로 나왔다. 사망률이 높은 여성 폐암이 늘면서 남녀 기대수명의 차이를 좁히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 폐암은 최근 급속히 증가해 2020년에만 9292명의 신규환자가 발생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남자 환자 수는 여자의 2.1배로 1만 9657 명이었다.
남자의 흡연-음주율이 여자보다 더 높은 것은 각종 통계에서 확인된다. 흡연자가 많은 남자는 방광암이 여성의 4.1배, 신장암은 2.3배, 위암은 2배에 이른다. 발암물질이 많은 담배 연기는 폐뿐만 아니라 위, 신장, 방광 등 온몸을 침범해 암세포가 움트게 한다. 과음이 최대 위험인 식도암은 남자가 여성의 8.3배나 된다. 특히 음주와 흡연을 같이 하면 암 발생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식도암 위험이 100배 정도 커진다. 남자의 장수에는 음주-흡연이 최대 걸림돌인 셈이다.
남자의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에는 퇴직 이후의 생활습관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심신이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정년 퇴임 후 5년 정도 지난 60대 중반(66세)에 노쇠한 경우 10년 내 사망할 위험이 약 4.4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노쇠는 정상적인 노화와 달리 각종 질병과 노화가 축적되어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다. 서울아산병원-연세대 의대-미국 하버드대 공동 연구팀이 만 66세 96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논문으로, 미국 의사협회 국제학술지(JAMA Network Open)에 최근 발표됐다.
66세에 노쇠한 사람들은 10년 내 심부전 위험이 2.9배, 당뇨병 2.3배,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이 2.2배였고 신체·정신적 기능 저하로 간병이 필요한 경우는 10.9배 높았다. 낙상, 골절, 관상동맥질환 위험도 증가했다. 같은 나이라도 생물학적 노화 정도, 즉 노쇠 수준에 차이가 난 것이다.
요즘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강수명의 가치를 더 중시한다. 100세를 살아도 병으로 누워 지낸 기간이 길면 장수의 의미가 옅어진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힘들다. 젊을 때부터 올바른 식습관, 운동, 금연, 절주, 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해 노쇠와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중년이라도 늦지 않다.
60세에 접어든 남자들의 급격한 노쇠를 막기 위해서는 퇴직 이후 생활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규칙적인 운동도 좋지만 평소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한다. 아내와 설거지, 청소, 정리 등 집안일을 분담해서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청소, 정리 등 가사도 훌륭한 신체활동이다. 아내가 시켜서 억지로 하지 않고 스스로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제대로 운동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리 할머니들 가운데 평생 헬스클럽 한 번 안 가봤어도 100세 건강수명을 누리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 분들의 대부분은 부지런하다. 틈만 나면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자주 걷는다. 반면에 일부 할아버지는 매일 흡연, 음주에 장시간 앉아 있거나 누워 쉬는 경우가 많았다. 주방 근처는 얼씬도 안 한 경우도 있었다. 아내가 병이라도 걸리면 이 분들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진다. 요리를 못하니 먹는 것이 부실하고 몸의 움직임 부족으로 근감소증까지 오면 위험해 질 수 있다. 이런 일부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장수 관련 연구 논문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자보다 건강 관리에 더 힘써야 한다. 배우자와 사별을 해도 사망 위험이 남자는 여자의 2.5배나 된다. 늙어서 아내에게 더욱 의지하는 남편은 건강 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유전자 뿐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한 측면이 크다. 여자는 중년에 갱년기를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지만 남자는 노년에도 음주-흡연, 운동 부족 등 나쁜 생활습관을 반복한다.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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