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도전, 외국기업 독과점 수술로봇 시장 뚫은 국내 기업

박정렬 기자 2023. 4. 18. 16: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술용 로봇이 태동한 곳은 미국이지만 키워낸 곳은 한국이다. 세계 최초로 로봇수술 3만례를 돌파한 의료기관이 우리나라의 세브란스병원이다. 유럽·일본에서 활약하는 로봇 수술의 대가(大家)들도 트레이닝을 위해 찾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다. 작은 구멍 몇 개에 카메라와 수술 도구가 달린 로봇팔을 넣고, 망원경처럼 좁은 시야에도 불구하고 수술에 성공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난달, 국산 수술용 로봇인 '레보아이'(Revo-i)를 도입해 화제다. 이미 국내에서 가장 많은 9대의 수술용 로봇을 운용하고 있는데 한 대를 더 추가했다.' 로봇 수술의 메카'에 입성한 것만으로 기술력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철옹성 같던 독과점 수술용 로봇 시장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16년의 도전 끝에 레보아이의 상급종합병원 진출에 성공한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는 "세브란스병원의 레보아이 도입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가 수술 로봇 '레보아이'의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래컴퍼니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술용 로봇에 적용되는 기술은 크게 기구, 제어, 비전으로 구분된다. 다양한 수술 도구, 손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팔, 선명한 카메라 시야가 모두 갖춰져야 우수한 치료 성적을 낼 수 있다. 김 대표는 "수술용 로봇은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의사가 원하는 대로 보고, 움직이면서도 정해진 수술 범위 안에서 4개의 로봇팔이 서로 엉키거나 부딪치지 않게 하려면 수많은 부품, 센서와 정교한 제어 기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1984년 설립된 미래컴퍼니는 본업이 디스플레이 장비·부품 제조라 비전 기술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기구, 제어 분야에서는 신생 업체나 마찬가지였다. 수술로봇사업부의 절반 이상을 석·박사급 연구 인력으로 채웠지만 각 분야가 하나의 산업 영역에 해당할 만큼 어려워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지름길은 있었다. 이미 상용화된 수술용 로봇을 따라 하면 됐다. 그러나 미래컴퍼니는 '고유 기술'에 집착하며 2007년부터 2017년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11년간 동안 수술용 로봇과 관련한 190여개의 특허를 쌓아 올렸다.

(사진 왼쪽부터) 레보아이를 구성하는 비전 카트, 오퍼레이션 카트, 마스터 콘솔. /사진=미래컴퍼니


그런데도 겉모습만 보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구성과 외관, 작동 방식이 기존의 수술용 로봇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미래컴퍼니 역시 레보아이를 "기존 로봇 수술과 비교해 이질감이 없으면서,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경쟁사보다 더 잘 보이고, 잘 움직이고, 사용하기 쉬우면서 한 건당 수술비용이 40%가량 저렴한 제품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다만, 수술용 로봇 시장의 독과점이 20년 이상 이어져 온 지금, 그것만으로는 '오리지널'을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 미래컴퍼니가 연구 개발에 '목숨을 건' 이유다. 수술용 로봇의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비전, 기구, 제어 분야에 새로운 기술을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피드백을 즉시 개발에 반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김 대표는 "복강경 수술 도구를 만드는 회사가 수술용 로봇 시장에 진출하고 싶을 때, 자체 특허로 기술 장벽을 형성한 미래컴퍼니는 안전하면서 탄탄한 협력사가 될 수 있다"라며 "이미 인도, 일본, 스웨덴, 미국 등 세계 각지의 테크놀로지 기업과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샥스 국제병원의 레보아이 설치 기념식에서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 샥스국제병원 주요 관계자들과 우즈베키스탄 복지부 장관(사진 왼쪽부터) 참석해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래컴퍼니


또 다른 '무기'는 미래컴퍼니의 사업 모델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사업은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30년이 넘게 고객사의 요구를 적시에 반영하고 신규 모델을 출시하며 경쟁력을 확보해 온 회사의 '혁신 DNA'는 수술용 로봇 사업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김 대표는 "병원에서 수술용 로봇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레보아이 기기와 함께 의사·간호사 교육, 유지 보수 전반을 지원하는 '로봇수술 프로그램'을 판매한다"며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은 수술 케이스가 늘어 수익에 도움이 되며 우리는 추가 로봇 도입을 기대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수술용 로봇은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시장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수술용 로봇 시장은 2020년 83억달러에서 2026년 336억달러로 연평균 26%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레보아이와 같은 복강경 수술 로봇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체 수술용 로봇의 70%가 미국과 캐나다에 집중된 상황에서 유럽과 중동, 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새로 개척할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미래컴퍼니의 판단이다.

레보아이는 우리나라 병원은 물론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수술용 로봇으로 도입돼 현재 다양한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로봇수술이 2005년 다빈치로 기록됐듯,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22년 도입한 레보아이가 로봇 수술의 '아이콘'이다. 김 대표는 "상급종합병원 진출을 통해 레보아이의 적응증과 치료 결과를 축적하고, 성능을 더욱 고도화할 것"이라며 "해외 의료진과 협력을 통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