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웃지 못하는 이유'…수익성 비상에 정부 눈치까지
도매가격 공개 규제에 유류세 인하 연장까지
국내 정유업계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하락세를 이어가던 정제마진이 최근 3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추가 감산을 발표함에 따라 유가가 반등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인 모양새다. 유가가 반등하는 가운데 정제마진만 떨어진다는 것은 석유제품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올해 1분기 정유업계 실적엔 빨간불이 켜졌다. 증권가는 국내 정유 4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본다. 일부 회사의 영업익은 8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부진에 정제마진 떨어져"
18일 업계에 따르면, 일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이 배럴당 3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3월 셋째 주 배럴 당 7.9달러였던 정제마진은 △3월 넷째 주 7.7달러 △4월 첫째 주 5.3달러로 내려앉더니 4월 둘째 주엔 3.9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6월 배럴 당 약 30달러까지 치솟았던 정제마진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정제마진은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상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은 5달러 내외로 알려진다.
이와 달리 국제유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들어 배럴당 80달러 초반의 흐름을 보여왔던 국제유가가 최근 90달러에 근접했다. 지난해 3월 배럴 당 130달러까지 올랐던 상황과 비교했을 땐 낮은 수준이나 올해 초 대비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는 OPEC과 OPEC+가 내달부터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추가 감산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7일 배럴당 85.93달러에 거래됐다.
앞서 지난 13일엔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거래가 87.36달러는 올해 최저가였던 지난 3월20일(70.31달러) 대비 24.2% 상승한 수치다.
유가 반등에도 불구하고 정제마진이 하락하는 이유는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유 감산 영향으로 원유 공시판매가격이 상승했으나 수요가 따라오질 못해 제품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경기침체가 수요 위축의 주원인이다.
유류세 인하조치·도매가격 공개여부 촉각
증권가에선 “국내 정유업계가 지난해와 같은 호황기를 누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는 국내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을 전년동기 대비 대폭 하락할 것으로 관측한다.
SK이노베이션의 올 1분기 예상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8조1732억원, 2941억원으로 나왔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11.7% 증가하는 반면 영업이익은 82.1% 급감할 것이란 예측이다.
에쓰오일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동기 대비 55.9% 낮은 5870억원으로 추산됐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 역시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 하락이 전망된다.
지난해 정유 4사 영업익 합산이 총 15조원에 이르렀던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엔 유가 급등과 동시에 석유제품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정유사들은 큰 이익을 봤다.
올해 수익성 악화를 마주한 업계는 정부 정책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이번 주 내 휘발유 및 경유 등 세금을 깎아주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조정될 방침이다. 시행 3년째인 유류세 인하 조치가 이달 말로 끝나는데, 정부는 해당 조치를 연장하되 인하 폭은 줄이는 방안을 유력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정부는 휘발유 세금을 25%, 경유는 37%까지 인하해 부과하고 있다.
석유제품 도매가격 공개 관련 재심의도 업계 관심사다. 정부가 10여년 만에 재추진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지난 2월24일 심의를 진행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시 심의 과정서 찬반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본격적인 논의엔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2차 심의 일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해당 정책에 대해 정유업계의 반발이 상당한 만큼 정부도 심도있는 자료검토 등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일각선 ‘무기한 연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 개정안은 일반 대리점과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의 도매가격을 공개하라는 것이 골자다. 특히 도매가를 유통단계별로,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해 공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업계는 “도매가격은 영업비밀”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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