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은행 금리 11배 드려요”...예금상품 첫선, 금융까지 접수하나
‘정보기술(IT) 공룡’ 애플이 미국에서 평균 예금금리의 11배가 넘는 이자를 주는 연 4%대의 저축 상품을 내놨다. 카드·송금·대출 등에 이어 예금까지 출시하며 금융시장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뱅크데믹(은행파산 공포)’ 확산으로 대량 예금 인출을 겪은 중소 은행들은 애플 예금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17일(현지시간) 연 4.15% 이자가 붙는 애플카드 저축계좌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미국 대형 은행 골드만삭스와 협력해 저축계좌를 내놓겠다고 밝힌 지 6개월 만이다.
애플이 제시한 금리는 미국 저축예금의 전국 평균보다 11배 이상 높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저축성예금의 연 이자율은 0.35%다. 기준 금리 상승으로 일부 은행들도 4%대 금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가입 조건 등으로 전체 예금액의 22%가 3%대 금리를 받는다. CNBC는 애플이 제시한 금리는 미국 은행 중 11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보다도 이자가 높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전국 19개 은행이 금리를 공시한 1년 만기 정기예금 상품은 39개로, 38개 상품의 최고금리가 연 4% 미만이다. 그나마 금리가 높은 대부분의 상품도 우대 조건 등이 있어, 절반가량이 기준 금리보다 낮다.
애플 저축계좌는 미국에서 신용 승인을 받은 애플카드 발급자들에 한해 개설된다. 개설 후에는 애플카드를 쓸 때마다 결제액의 최대 3%를 캐시백 형태로 받을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의 월렛(지갑) 앱에서 계좌를 만들 수 있고, 타 은행들이 요구하는 개설에 따른 수수료와 최소 예금 등의 요건은 없다고 설명했다. 맡길 수 있는 최대 금액은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다.
애플은 한국 등 다른 국가로의 서비스 확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의 애플페이 상륙에 9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국내 애플 계좌 도입에도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애플 계좌 관련해) 현 상황으로는 골드만삭스와 어떻게 협력을 하고 역할을 나눴는지, 통장 개설 및 카드포인트와 이자율 차이 등의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구축한 ‘애플 생태계’를 금융 서비스를 통해 확장하고 있다. 애플은 2012년 디지털 지갑인 월렛 출시를 시작으로, 애플캐시(개인 간 송금 서비스), 애플카드(신용카드) 등을 제공한다. 지난달에는 단기 대출 서비스인 애플 페이 레이터를 내놨다. 이를 위해 자회사 애플파이낸싱을 설립해 자체 기술로 소비자 신용을 조사하고 자금을 조달한다. 애플의 금융 서비스는 2015년 매출의 10%도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에는 20%를 넘었다.
전문가는 이번 상품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중소은행에 예금을 맡기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밍마 컬럼비아대 금융학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SVB 파산 후 은행들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애플의 기존 브랜드 인지도에 우호적인 금리가 더해진 이 상품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IT매체 테크크런치는 “애플이 향후 금리에 대해서는 어떤 보장도 하지 않았다”며 “금리가 언제든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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