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와야” “중개사도 못 믿어”…중개사무소는 지금 ‘전쟁터’

류인하·심윤지 기자 2023. 4. 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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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세사기로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지난 17일 인천 미추홀구의 해당 세대 앞에 전세사기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직장인 A씨(46)는 지난달 자신이 살던 경기도 평촌의 투룸 아파트 전세를 내놓았다가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입주하겠다는 사람은 금방 나타났지만 요구사항이 A씨 생각을 넘어섰다. A씨의 세금체납내역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반환보증이 나오지 않을 시 계약을 무효로 하고, 위자료를 지불할 것을 특약사항으로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특약사항 중에는 임대차계약 만료시 새 임차인 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것, 향후 다른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줘야할 경우 현 세입자 일정에 맞출 것 등도 포함됐다.

공인중개사가 “A씨는 직장 문제로 실거주하던 집을 내놓는 것이고 (집을 사느라 받은) 대출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공인중개사는 집주인 편 아니냐”는 말이었다. A씨는 “아무리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라지만 나같은 사람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전세사기와 관계없는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업을 해온 B씨는 “계약은 없고 싸움 말리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예방대책으로 이달 1일부터 보증금 1000만원을 초과하는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의 동의없이도 세무서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미납세금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종종 말다툼이 벌어진다고 했다.

B씨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불안하니까 (체납내역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건데 오랫동안 빌라한 채 쥐고 살아온 어르신들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내가 오래 봐 온 분(임대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요즘은 공인중개사 말도 일단 불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 멀리 사는 경우엔 바쁘니까 관리해주는 부동산에서 계약하고 추이만 체크하다가 잔금일에 나타나거나 하는데 지금은 (임차인들이) 임대인이 직접 오지 않으면 무조건 계약 안 한다고 한다”면서 “부동산도 못믿겠다고 하고, 임대인 왔는데도 임대인 본인 확인을 해야겠다면서 서로 불신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전에도 임대인이 직접 계약 안했다고 가계약금 물어주고 계약을 취소했다”고 했다.

계약 만료시점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면서 HUG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자 수도 매년 늘고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빌라는 100%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지부터 묻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8일 HUG에 따르면 2019년 15만6095가구에 불과했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건수는 2020년 17만9374건에서 2021년 23만2150건, 2022년 23만7797건까지 늘어났다. 불과 3년만에 가입자수가 52.3%(8만1702건)이나 증가한 셈이다. 올해 1~2월 두 달 사이 가입자수는 4만8960건으로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가입자수는 27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식의 관행도 바뀌는 추세다. 직장인 C씨(32)는 최근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 보증금을 받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실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건수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월평균 870건(누계 1만441건)이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건수는 2022년 1181건(누계 1만4175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1~3월 평균 3085건(누계 9255건)까지 급증했다. 불과 2년새 3.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만료 시점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임차인이 관할 법원에 신청해 받아내는 명령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내면 보증금에 대해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있다.

김종보 변호사(휴먼 법률사무소)는 “전세사기가 아니더라도 집값 하락에 따른 보증금 미반환 사례(깡통전세)가 늘어나면서 법적분쟁도 늘고 있다”면서 “임대차보증금 반환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신속하게 조정신청을 하거나 임차권등기명령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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