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잇따라 사망… 정부 긴급 주거지원·대출 연장도 ‘실효성 없다’ 지적
보증금 한도 3억원, 피해 규모 작은 세입자만 혜택
긴급지원주택도 실거주 요건과 동떨어진 주택 ‘비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 뭉쳐 대책위원회 꾸린다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책들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전세자금 대출과 긴급주거 지원 정책을 내놨지만, 일각에서는 대출의 경우 기준이 까다롭고 긴급주거 지원책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2시 12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 A씨가 사망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로 경찰에 신고를 접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에도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 대환대출 실행도 5월부터… 경락 대출 대책 없어 ‘경매 포기’도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대항력 유지를 위해 기존 주택에 거주해야 하는 경우 저리로 대환대출을 실행한다는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대환대출이 5월부터 시작돼 당장 집에서 나가야 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지키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기존 전셋집에 거주해야 할 경우 기존 전세대출을 1~2%대 금리로의 저리 대출로 대환할 수 있도록 상품을 신설했다. 보증금 한도를 기존의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했지만, 도미노처럼 전세사기가 터지면서 3억원대 이상의 전셋집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허점이 생겼다. 5월부터 시행된다고 해도 피해 규모가 작은 세입자들만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세입자가 경매에서 낙찰받으려고 해도 가용 재산이 부족한데, 경락 대출 지원은 없어 경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매는 일반적인 매매와 달리 낙찰 때 10~20%가량을 보증금으로 내고 낙찰 후 45일 이내에 잔금을 치러야 한다.
정부는 긴급지원주택 200여가구를 확보해 당장 살 집을 잃게 된 피해 가구에 우선 공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제공한 긴급지원주택이 원룸이거나 도심과 떨어진 나 홀로 주택인 등 실거주 요건과 동떨어진 주택들인 경우가 많다 보 이용률은 저조한 편이다.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에 있는 긴급주거 임대주택 238가구 중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입주한 세대는 8가구(3.36%)에 불과하다.
◇ 전세사기 피해자 결집한다… “기존 제도로 해결 불가능”
전국 단위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를 향해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모여 18일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전세사기·깡통전세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이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대출 지원이나 긴급주거 지원도 기준이 까다로워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전면적인 피해실태 조사와 정부 대책 사각지대 보완, 맞춤형 금융 지원 등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책위는 “심각한 세입자 주거 불안의 현 상황이 개인 노력이나 기존 제도 내 해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대책위를 출범했다”며 “관련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절차를 일시 중지해달라는 등의 주장을 내놓는다. 경매 시 전세 피해자의 집을 노리는 다른 경매 참여자들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망한 A씨가 살던 집에는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7일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매 절차를 포함한 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해 법무부, 금융위원회와 논의하는 중”이라고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부의 노력에도 전세사기로 안타까운 일이 연달아 발생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전세 사기 부동산 매물의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국토부에 지시했다. 이날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경매 일정의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시행 명령을 받은 것이다. 국토부는 곧 전세사기에 대한 별도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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