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개입한 여당…‘전기위’ 조직개편 동력 잃었다[뉴스분석]
전기요금 인상 여부 결정 미뤄져
정부 ‘원가 연동 연료비’ 동력 잃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안 발표 불투명
올해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에 관한 결정이 보름 넘게 미뤄지고 있다. 여론의 눈치만 살피느라 국민의힘이 요금 결정에 개입한 데 이어,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도 미루면서 사실상 현행 전기요금 결정체계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독립적인 별도의 기관을 내세워 전기요금을 연료비 등 원가와 연동하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도 동력을 잃은 모습이다.
1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달 말 불발된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이 이달 내 발표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난달 30일 당정협의회 이후, 구체적인 요금 인상 폭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당정협의회 이후, 별도 요금 인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의 추가 자구계획에 대해서만 이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하는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론 수렴’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면서 당정협의회 날짜도 확정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윤 대통령의 오는 24일 미국 방문 일정을 고려하면 결국 인상 여부는 방미 후 결정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같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대통령과 여당이 직접 개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국전력이 조정안을 작성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하면 산하 기관인 ‘전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했다. 이 과정에서 물가안정법에 따라 산업부가 미리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했다. 사실상 전기위는 심의만 할 뿐, 최종 결정은 산업부와 기재부에 있는 구조였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원회 때부터 전기요금 결정체계 손질을 예고했다. 막대한 규모의 한전 적자가 탈원전·선거 등 정치적 요인을 지나치게 의식한 정부에 있다고 판단, 전기 가격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검토안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부와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까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들도 별도의 독립기구를 통해 전기요금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비판 여론에 놀란 여당이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개입하면서 전기위 조직개편도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애초 산업부는 올 상반기를 목표로 전기위 조직개편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국정과제였던 전기위 조직개편이 이번 여당의 개입으로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여권 개입으로 오히려 전기요금 결정 방식이 이전보다 후퇴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해관계자 여론 수렴’을 이유로 전기요금에 연료비를 반영할 여지를 사전부터 차단하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 여당에서는 한전의 적자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의 결과라는 정치적 공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부는 ‘에너지공기업 경영현황 긴급 점검회의’ 등을 열려고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회의가 잇따라 취소됐다.
또한 여당이 요구한 추가 자구안은 한전 적자를 해소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자구안에는 간부급 직원 임금 동결과 성과급 반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지만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 효과는 크지 않다.
이날 전기 관련 단체협의회는 대한전기협회 사무실에서 정책간담회를 열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촉구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난해 국내 전체 회사채 발행 규모 47조원 중 한전채만 32조원대로, 연못에 고래 한 마리가 들어앉은 상황”이라며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못하면 (올해도) 한전채가 많이 증가해 수급 불안과 시장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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