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비웃는 생떼 시위…기업 직원·주민이 무슨 죄?
기사내용 요약
법 맹점 악용…불법 현수막·고음 시위
시위로 기업 직원·인근 주민 피해 심각
불법시위 막는 구체적인 법 조항 필요
[서울=뉴시스]유희석 기자 = 대기업 사옥 주변에서 벌어지는 '생떼 시위'로 해당 기업 직원과 인근 주민이 큰 피해를 입는 가운데 법적 공백과 느슨한 행정 규제가 '편법·불법 시위'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위 주체가 악의적으로 현행법의 헛점과 미온적인 공권력의 약점을 노리더라도 이를 막을 대안이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하되 타인의 기본권이나 공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집회나 시위는 제한하는 구체적인 조항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의 행정조처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른다.
변칙 시위 막지 못하는 법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은 전용 게시대에 게시하려면 관할 행정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 외 장소에 걸린 현수막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철거 대상이다. 그러나 집회 용품으로 신고된 광고물은 단속에서 배제된다. 현수막 개수의 제한도 없으며, 집회 신고 기간에는 집회가 실제 열리지 않더라도 단속 규정이 불명확해 철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런 법의 맹점을 이용해 30일 간격으로 집회 기간만 연장하며 현수막을 마구잡이로 내거는 사례가 빈번하다. 자극적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원색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기업 사옥, 주택 등을 포위하듯 1년 내내 걸려 있어도 집회 신고만 하면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법제처가 2013년 '실제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현수막을 표시·설치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지만 구속력이 떨어져 실제 현장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부작용이 심각하고 단속규정이 불명확해 실제 집회가 열릴 때에만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도록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성 현수막 문구도 문제다. 해당 문구를 표기한 현수막에 대해 피해 기업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원에 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승소해도 별 효과가 없다. 일부 문구만 변경해 현수막을 다시 게시하기 때문이다. 피해 기업이 다시 가처분 신청하고 법원의 판결을 받으려면 또 다른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 한다. 사회적 낭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꼼수로 소음 규제도 교묘히 피해가
집시법상 소음 규제가 있지만 이를 회피하려는 각종 꼼수가 동원되고 있어서다. 일부 시위는 최고 소음의 경우 1시간 동안 3번 이상 기준을 넘길 때, 평균 소음은 10분간 연속 측정해 기준을 넘길 때 단속 가능하다는 집시법의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고성능 확성기로 1시간에 2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낸 후 나머지 5분간은 소음을 없애는 식이다.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일정 지역에만 정식 집회 신고를 하고, 기업 출입문 등에서는 기준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례도 있다.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소음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집시법상 최고 소음 강도를 초과해도 사실상 제재하기 어렵다. 별도 소음 기준이 없어 민원이 발생해 경찰이 개입하는 경우에만 잠시 확성기 볼륨을 낮췄다가 다시 높이기를 되풀이하는 장면도 목격된다. 경범죄 처벌을 받는다 해도 범칙금에 불과하다.
대기업 사옥 주변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경우 소음 피해는 더 극심하다. 고층 빌딩이 늘어선 기업 주변에서의 시위 소음은 소리가 울려 높은 층에서는 낮은 곳보다 더 크게 들린다. 하지만 고층 빌딩 환경에 맞춰서 소음을 측정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마땅치 않다.
도로 위 불법 천막으로 '보행자 안전' 위협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설치한 천막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도로법 위반으로 지자체에서 여러 차례 철거 계고장을 발부해도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천막도 집회 용품이라고 주장하면 지자체에서도 물리적 충돌 및 민원을 우려해 실제 철거를 하기가 어렵다. 경찰 역시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시위대와의 마찰은 피해 기업과 인근 주민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법원의 시위 방식에 대한 금지 가처분 결정, 민·형사상 판결이 내려져 시위 명분을 상실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시위를 이어가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실제 한 대기업은 사옥 앞에서 장기간 무리한 1인 시위를 벌여온 A씨에게 과대 소음, 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 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형사소송 1심에서도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억지 주장을 계속 내세우며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생때 시위 막는 '법 개정' 절실
현행 집시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는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시위의 권리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일부 모호한 표현과 법적 공백에 따라 상습적인 민폐 시위도 실제로는 단속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행 21대 국회에는 20여 건이 넘는 집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대부분 집회·시위의 자유와 충돌되는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취지들의 개정안이다. 이는 갈수록 증가세인 무분별하고 부당한 집회가 우리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사회 문제를 막기 위해 반드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 이 중 지나친 소음, 일상 침해 등 도를 넘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해 금지 또는 제한 장치를 보완하자는 의견이 다수 포함돼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회 계류 중인 현행 집시법에 대한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고, 갈수록 다양해지는 편법·불법 시위를 제한하는 현실적인 법규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법과 원칙, 상식을 지키는 시위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행정당국도 더 능동적으로 나서고 공권력 집행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eesu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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