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업계 1위…韓 ‘교향악단 계의 이단아’ KBS교향악단 [클래식 유튜브]
1년 만에 무려 13배 수직 상승
조회수 평균 551회→최고 340만회
4개월 만에 국내 교향악단계 평정
전문성ㆍ대중성 투 트랙 전략
‘과유불급’…본질 지킨 ‘재미의 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22년 4월까지 구독자 숫자는 고작 4000명. 평균 조회수는 551회, 댓글은 0.5개에 불과했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의 청정지대였다. 2023년 4월,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구독자는 5만 4600명. 무려 13배나 뛰었다. 최고 조회수는 340만회로 늘었다. 평균 조회수는 31배 증가한 1만 7994회, 댓글은 265배나 늘어난 평균 133개에 달한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2월 유튜브 채널 실태 조사 당시 국내 교향악단 중 4위였다고 한다. 4위라고는 하나, 국내 3대 오케스트라(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중 누가 봐도 ‘꼴찌’였다. 민간 오케스트라보다도 구독자 숫자가 낮았다. KBS교향악단 이야기다.
실태 조사를 마친 뒤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에 구독자 4000명은 너무도 빈약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47만 3000명)을 필두로 무수히 많은 악단들이 유튜브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이끄는 뉴욕필하모닉은 11만 명, 런던필하모닉은 6만 9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국내 상황은 이보다 저조하다. 한국의 클래식 인구는 여전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만 5900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1만 6800명이다.
지난해 4월 채널 개편을 마치고, KBS교향악단은 ‘클래식 계의 이단아’로 떠올랐다. 변화가 극적이다. 현재 구독자 숫자로는 국내 오케스트라 중 1위. 최정상에 오르기까지 불과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작 단 한 명이 운영하고 있는 채널은 ‘철저한 전략’과 ‘편집 방향성’으로 클래식 악단의 유튜브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는 대중성과 전문성의 ‘투 트랙’ 전략으로 운영 중이다. 이 채널을 운영하며 영상 기획, 촬영, 편집, 제작까지 도맡고 있는 서영재 공연사업팀 사원은 “대중성 있는 콘텐츠로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줘 새로운 구독자를 만들고 영상 소비에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영입된 구독자를 악단의 관객으로 유입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사실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유튜브 채널은 좀 심심하다. 대부분 공연 중계 영상을 게재하는 데에 그친다. 서 사원은 “이러한 접근이 현재 전 세계 주요 악단들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티켓을 구하기도 어려운 공연인 만큼 악단의 연주를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채널의 존재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KBS교향악단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클래식 음악의 진입장벽이 높은 국내 상황을 반영한 콘텐츠가 태어났다. 이 채널의 강점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서 사원은 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 학창시절 클래식 채널을 운영한 1세대 클래식 크리에이터다. 이후 2020년 소프라노 조수미의 클래식 채널을 1년간 담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KBS교향악단에서 객원 단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 전공자의 전문성과 일찌감치 익힌 유튜브 감성은 KBS교향악단의 채널 방향성과 전략 수립의 큰 틀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됐다. 서 사원은 “클래식 음악 자체가 재밌는 콘텐츠로 만들기 어려운 장르인데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찾으면, 전공자라는 이점과 어우러져 유리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에선 일주일에 적게는 2개, 많게는 6~7개까지 콘텐츠를 올린다. 정규 콘텐츠로 만들어진 재생목록은 총 9개다. 전문성을 담은 콘텐츠로는 ‘클래식 토크쇼’인 ‘나이스 투 매튜’가 대표적이다. 악단의 타악기 연주자인 매튜 에른스터가 진행자로 나서 협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콘텐츠의 제목은 ‘나이스 투 미트 유’에 연주자의 이름을 조합해 태어났다. 이 역시 유튜브 감성이다. ‘악보가 있는 디지털 K홀’도 전문 콘텐츠다. 협연자가 있는 정기 연주회 영상에 연주곡 전 악장의 악보를 붙여 “마니아 층을 위한 콘텐츠”로 제공한다.
‘클래식 최고의 플레이’는 보다 대중적인 영역이다. 음악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을 숏츠 형태로 제작한다. 작곡 동기와 해설, 악보를 덧붙인다. 60초 이내의 숏츠 영상은 KBS교향악단이 오케스트라 최초로 시도한 콘텐츠다. ‘백스테이지’ 영상도 대중성을 겨냥한 콘텐츠다.
KBS교향악단에 따르면 구독자 증가 조짐이 시작된 영상은 2022년 6월 17일 올린 로스트아크 기획공연의 지휘자 코멘터리 영상이다. 지금까지도 34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 영상은 당시 인기 급상승 동영상 28위에 오르기도 했다. 역대 최고 조회수 영상은 지난 3월 15일 올라온 팀파니가 찢어진 영상(340만회)이다. ‘편집의 힘’이 절묘했다. 7대의 카메라가 4K로 생생하게 담아낸 영상이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팀파니 연주자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살렸다. 마지막 장면까지 완벽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 거장 엘리아후 인발의 인자한 너털 웃음이 ‘화룡점정’이었다. 서 사원은 “당시 상황을 보며 이건 되겠다 싶었다”며 “모든 스토리엔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흐지부지하게 마무리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스토리텔링을 넣었다”고 말했다. 조회수 2위 영상은 지난해 11월 15일 올라온 ‘공연장 백스테이지에서 생긴 일’(조회수 231만회)이다.
KBS교향악단 콘텐츠의 강점은 ‘지나치지 않다’는 점이다. 클래식의 본질을 지키면서 재미를 더한다. ‘채널 방향성’과 ‘편집 철학’이 맞닿아 만든 결과다.
유튜브 세계에서 편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클래식 장르의 성격상 지나치게 가벼워도, 그렇다고 ‘진지 모드’의 무리수를 둬서도 안 된다. 지루하거나, 불편하거나, 관심이 없으면 0.5초 안에 ‘스킵’(건너뛰기)을 당하고 마는 냉혹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편집의 방향성은 대중이 영상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서 사원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몰입감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음식을 손님에게 내놨을 때, 요리사 혼자만 맛있으면 안 된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맛있게 느껴야 한다. 편집할 때에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는게 아니라, 제3자 입장에서 누가 봐도 통하는 영상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태어난 ‘영상의 힘’은 엄청나다. 팀파니가 찢어진 영상은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낯선 악기에 대한 관심까지 불러왔다. 사실 팀파니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진다. 영상의 주인공인 이원석 KBS교향악단 팀파니 수석은 “이 영상을 통해 팀파니라는 악기가 이렇게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댓글창도 폭발했다. 미처 몰랐던 KBS교향악단 단원들의 뛰어난 역량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준 영상이기도 했다. 당시 연주회를 관람한 한 관객은 “팀파니가 찢어지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고 관객들이 웅성웅성했는데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완벽한 무대였다”는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관객은 “팀파니 세 개로 연주를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엄청난 내공을 보여줬다”며 감탄했다.
클래식 악단들이 유튜브 채널 강화에 힘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영상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세대를 확장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스타 단원’이 탄생하기도 한다. 클래식 업계에선 “대중음악처럼 폭발적이진 않아도, 고전음악도 유튜브를 통해 소구하고 ‘대중의 클래식화’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온다.
이제 클래식 계에도 유튜브 채널은 ‘필수요소’가 됐다. 서 사원은 “우리나라는 전 세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유튜브 동영상 시청률도 굉장히 높다. 클래식 음악에도 유튜브는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라고 강조했다. 이 수석 역시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될 수는 없지만, 대중이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은 예술이 갖는 오락과 교육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한다”며 “유튜브 채널이 클래식 음악의 잠재적 고객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봤다.
KBS교향악단은 클래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오프라인 위주의 공연 콘텐츠로 운영되던 한계에서 벗어나 선(先) 디지털 시대를 시작한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만든 콘텐츠를 오프라인으로 연계하는 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역시 국내 교향악단 최초의 시도다.
서 사원은 “햄버거와 피자가 많이 소비된다고, 오마카세를 즐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맛을 들이면 가요만큼 재밌는 장르가 클래식”이라며 “클래식이 특정 소수의 예술이 아니라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클래식도 들을 수 있도록 편안한 장르로 나아가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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