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엇갈린 시선]①어느덧 60살, 280조 '고래' 되다

이경남 2023. 4. 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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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5개 금고 시작…2023년에 자산규모 284조
새마을운동·디지털 바람 타고 '전국구'로 발돋움
새마을금고가 올해 60주년을 맞이했다. 새마을금고는 상호금융만의 경쟁력과 우리나라 특유의 향토정서를 바탕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주요 은행 못지않은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최근에는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서 새마을금고를 둘러싼 시선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새마을금고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최근의 시선에 대해 조명해본다. [편집자]
/그래픽=비즈워치

자산규모 284조원의 '고래 금융기관'. 다름 아닌 새마을금고의 이야기다. 지난 1963년 출범한 새마을금고가 올해로 출범 6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금융사에는 외환위기(IMF)와 글로벌금융위기라는 굵직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두 번의 걸친 위기 속에서 적지 않은 금융기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새마을금고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IMF때는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지도 않고 버텼다. '저력'이 있는 금융기관이라는 얘기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국내의 성공사례를 이제는 해외로 전파하는 금융 한류의 선봉에도 선 모습이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새마을금고가 갖는 장점을 흡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우리나라를 찾는다. 60년간 새마을금고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새마을금고 개요.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경상남도 5개 협동조합이 전국 3218개로 

새마을금고의 역사는 지난 1963년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하둔리 △창녕군 성산면 월곡리 △의령군 의령면 정암리 △의령면 외시리 △남해군 마산리 등 5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며 시작됐다. 

새마을금고가 본격적으로 '전국구 금융기관'이 된 것은 1980년대 라는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핵심 정부 정책인 '새마을운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현대화' 되기 시작했고 이는 향토 중심의 금융기관으로 이제 막 태동한 새마을금고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1980년대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되면서 새마을금고는 제도권 안으로 본격적으로 편입됐다. 이후 예금자보호를 위한 안전기금 사업 개시, 새마을금고중앙회 설립, 공제사업 개시 등을 시작하면서 금융기관으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이후 각 지역, 기업 등을 중심으로 금고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2022년 현재 금고본점과 지점수를 포함해 3218개로 확대됐다. 새마을금고와 거래하는 고객 수는 2180만명에 이른다. 

덩치를 키우면서 사업영역도 시나브로 넓혀나갔다. 공제사업은 보험업으로 명맥을 이으며 MG손해보험의 탄생의 기초가 됐고 최근에는 캐피탈업권에도 진출했다. 

새마을금고가 '전국구'로 발돋움 하면서 덩치 역시 최고 금융기관인 은행 못지 않게 성장했다. 지난해말 기준 새마을금고의 총자산 규모는 284조원이다. 이는 하나, 신한, KB국민,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바로 뒤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 

덩치만큼 내는 순익규모도 수준급이다. 지난해 새마을금고의 순익은 4667억원으로 집계됐다. 웬만한 지방은행급의 실적이다. 

이러한 '성공방정식'은 이제는 해외에서 찾아와 배워갈 정도가 됐다. 새마을금고는 매년 우간다, 미얀마, 라오스, 피지 등에서 새마을금고 형식의 금융기관을 안착시키고 있다. 금융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새마을금고는 어떻게 전국구가 됐나 

오늘날 새마을금고가 '전국구' 급 금융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계', '향약' ,'두레'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대표 향토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화 운동 '새마을운동'의 시너지가 발휘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역민들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향토문화는 얼핏 금융회사의 최고 추구 가치인 '신뢰'와도 추구하는 바가 같다. 뿌리가 같다는 얘기다. 

아울러 1970년대 시작한 새마을운동과 새마을금고의 이같은 설립 정신은 궤를 함께했다. 새마을운동의 핵심은 지역간의 경쟁심리 자극을 통한 전국적인 현대화 사업이었는데, '지역'이 강조되다 보니 향토중심의 금융기관이었던 새마을금고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새마을금고'라는 이름 또한 이 '새마을운동'에서 유례됐을 정도다. 

새마을금고 한 이사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국적인 새마을운동으로 돈줄을 대는 새마을금고도 함께 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새마을금고가 현재는 '전국구'라고는 하나 금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금고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거나 직장 소재지가 금고와 같아야 한다는 문턱도 있었다. 새마을금고라는 이름으로 뭉쳐있지만 각 금고는 개별 사업자라는 상호금융기관의 특성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는 금융의 디지털화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었고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디지털기술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전산망시스템구축 이후 새마을금고 고객이라면 가입 금고가 아닌 다른 금고에서도 간단한 금융거래가 가능해졌다. 디지털뱅킹이 출시되면서 일부 금융상품은 주소나 직장 소재지가 판매 금고와 달라도 가입이 가능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의 디지털화는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기관의 접근성을 크게 낮추는 계기가 됐다"라며 "새마을금고가 계속해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같은 디지털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온 영향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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