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도, 킵초게도 ‘보스턴의 비’에 가로막혔다
경기 중단됐다가 재개돼 3승 도전 실패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킵초게도 6위 머물러
오타니도, 킵초게도 가로막혔다.
미국 보스턴엔 17일(현지시각) 비가 내렸다. 4월의 세 번째 월요일인 이날은 미국 독립전쟁 최초의 전투를 기념하는 ‘애국자의 날(Patriot’s Day)’이었다. 오전 9시부터는 3만여명이 도심을 달렸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2013년 4월15일)’가 일어난 지 10년을 맞는 대회였다.
오전 11시10분엔 펜웨이파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에인절스의 MLB(미 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56분이 지연되면서 낮 12시6분에 시작됐다.
◇오타니 2이닝 1실점…타자로는 2안타 1득점
에인절스의 선발 투수는 오타니 쇼헤이였다. 2018년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에겐 처음 경험하는 보스턴의 ‘마라톤 먼데이(월요일)’였다.
투·타를 겸업하는 오타니는 2번 타자로 처음 맞은 1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중전 안타를 쳤다. 이어진 1사 1-2루에서 4번 타자 헌터 렌프로가 외야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선제 3점 홈런을 터뜨렸고, 오타니도 홈을 밟았다. 에인절스는 이후 볼넷, 안타, 외야 희생플라이를 묶어 1점을 더 뽑았다.
2023시즌 들어 투수로 시즌 2승을 기록 중이던 오타니는 4-0의 리드를 안고 1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출발은 불안했다. 첫 타자인 라이멜 타피아를 볼 넷으로 내보내더니, 두 번 내리 폭투를 하면서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2번 라파엘 데버스는 3루 파울 플라이로 잡았다. 3번 롭 레프스나이더엔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아웃 처리했는데,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1실점했다. 오타니는 2023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에서 함께 뛰며 우승을 일궜던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시속 98마일(약 158km)짜리 강속구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 내며 이닝을 끝냈다.
오타니는 2회 초 무사 1루에서 맞은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때려 1루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1회 3점 홈런의 주인공인 렌프로가 1사 후 유격수 땅볼을 치는 사이 3루 주자 잭 네토가 홈으로 들어왔다. 1점을 추가한 에인절스는 5-1로 앞서 나갔다.
오타니는 2회 말 마운드에선 외야 뜬공과 삼진 2개로 레드삭스 타선을 막아냈다. 그런데 3회 초 에인절스가 2사 1-2루 상황에서 공격을 하던 중 빗줄기가 거세졌다. 이 바람에 경기가 1시간25분간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레드삭스는 어깨가 식었던 선발 투수 브라이언 베이오를 내리고, 커터 크로포드를 마운드에 올려 이닝을 마무리했다.
에인절스도 3회 말 수비를 앞두고 선수 보호 차원에서 투수를 오타니에서 터커 데이비슨으로 바꿨다. 오타니의 투수 성적은 2이닝 1실점(1볼넷·3탈삼진). 공은 31개(스트라이크 20개)만 던졌다. 2이닝 이하 투구는 2021년 7월1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3분의2이닝 7실점한 이후 처음이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0.47에서 0.86으로 약간 나빠졌다.
지명 타자 역할로 세 번 더 타석에 선 오타니는 안타를 추가하지는 못했다. 6회 4번째 타석에선 투수 실책으로 1루를 밟았으나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됐다. 오타니의 시즌 타율은 0.288에서 0.298로 좋아졌다.
에인절스(8승8패)는 1-2회에 얻은 5점을 끝까지 지키며 5대4로 이겨 3연패에서 벗어났다. 두 번째 투수 데이비슨이 3과 3분의1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승리를 따냈다.
레드삭스 팬들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가 일어났던 2013년을 잊지 못한다. 레드삭스는 테러 참사가 일어났던 날 안방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3대2로 눌렀다. 경기 후 팬들은 거리로 나가 마라토너들을 응원했다. 오후 2시50분쯤 결승지점 부근에서 180m를 사이에 두고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나 8살 남자 어린이와 20대 여성 2명(미국인과 중국 유학생)이 숨지고 많은 이들이 다쳤다. 체첸 이민자 출신 형제가 사제 폭탄으로 벌인 테러였다.
레드삭스는 이후 원정 경기를 치르다 참사 닷새 만인 2013년 4월20일 펜웨이파크로 돌아왔다. 당시 간판 타자였던 데이비드 오티즈는 그라운드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이곳은 우리의 도시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좌지우지하지 못할 겁니다. 힘 내세요”라는 연설을 했다. 시민들은 테러의 아픔을 딛고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라는 구호로 뭉쳤다. 레드삭스는 그해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MVP는 데이비드 오티즈였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오티즈는 이번 보스턴 마라톤에서 그랜드 마셜(Grand Marshal)로 참여, 시상식 진행 등을 맡았다.
◇마라톤 최강자 킵초게, 보스턴 마라톤 첫 도전에서 6위
127회를 맞은 올해 보스턴 마라톤의 최대 관심사는 엘리우드 킵초게(39·케냐)의 우승 여부였다. 킵초게는 작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2시간01분09초)을 세웠다. 2018년 같은 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했던 종전 기록을 30초 앞당겼다.
그는 2019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INEOS 1:59 챌린지’에선 1시간59분40초에 결승선을 통과, 최초로 2시간 벽을 깬 적도 있다. 기록이 공인되지는 않았다. 킵초게 혼자만을 위한 이벤트 대회였기 때문이다. 페이스 메이커들이 킵초게 앞을 달리며 바람의 저항을 줄여줬고, 자전거를 탄 진행요원이 킵초게가 원할 때마다 음료수를 건냈다. 신발도 나이키가 킵초게를 위해 특별 제작한 제품으로, 공인받지 못했다.
2시간 돌파 외에 킵초게의 또다른 목표는 세계육상연맹이 공인한 6대 메이저 대회(베를린·런던·시카고·뉴욕·보스턴·도쿄) 우승이다. 런던(4회), 베를린(4회), 시카고(1회), 도쿄(1회)에서 정상에 올랐던 그는 보스턴과 뉴욕 마라톤 우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는 앞서 17번 풀코스(42.195km)에 출전해 올림픽 2연패(2016 리우·2020 도쿄)를 포함, 15번 우승(준우승 1번)을 차지했다.
하지만 첫 도전이었던 이번 보스턴 대회에선 6위라는 낯선 성적표를 받았다. 2시간09분23초라는 기록 역시 자신의 통산 풀코스 기록 중 가장 나빴다. 비가 내리면서 레이스 중반 무렵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나는 한계에 도전하며 살고 있다. 세상에 ‘보장된 결과’는 없다. 오늘의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 들인다. 오늘은 졌지만, 또 한계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남자부 우승은 에번스 체벳(35·케냐)이 차지했다. 2시간05분54초로 가장 먼저 결승지점을 통과해 작년(2시감06분51초)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했다. 체벳은 케냐의 로버트 킵코에크 체루이요트(2006·2007·2008년 우승) 이후 처음 연패(連覇)에 성공했다. 체벳은 작년 11월 뉴욕 마라톤 우승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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