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SL 취재기, 부족했던 첫 술…그래도 앞으로가 기대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ASL에는 KBL(SK, KGC), B.리그(우츠노미야 브렉스, 류큐 골든 킹스), P.리그(타이페이 푸본 브레이브스), PBA(산 미겔 비어맨, TNT 트로핑 기가) 우승 및 준우승팀, 그리고 단독팀으로 베이 에어리어 드래곤스가 출전했다. 중국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농구 좀 한다는 리그의 강호들이 모두 출격한 셈이다. 애초 두 개조로 나뉘어 홈-앤-어웨이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수정되어 단기 대회로 치러지게 됐다. 대회를 팔로우하며 느낀 점들을 정리했다.
“여기(일본) 오려고 20일간 10일을 경기했네요.”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우츠노미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한 뒤 KGC 김성기 사무국장이 긴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나 역시 한 조직의 책임자다보니 출장 전에 매듭지어야 할 일이 많았다. 하필 공포의 월말이 겹쳐 출장 전 일주일 동안 꼬박 밤을 새웠다. 아마도 이런 심경이 아니었을까. 구단 직원들은 선수들 여정과 숙박, 훈련 일정 등을 조율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고, 선수단은 나름대로 리그 일정을 소화하느라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비로소 일본에 도착하니 ‘오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사무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원래 이 대회를 치르고 귀국하자마자 대구에서 경기를 치르는 거였어요. 너무 일정이 타이트해서 한국가스공사 측에 부탁해 2월 26일(일요일)로 변경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 주셔서 다행이었죠.” 김 국장의 말이다. 자칫 귀국 바로 다음 날 경기를 할 뻔 했다는 의미다.
일본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했다. 미필자인 한승희와 변준형은 출국 전에 병무청에 신고를 해야 했는데, 이를 뒤늦게 알아 출국 당일까지도 모두가 바삐 움직였다. 일본 입국을 위해서는 앱을 통한 절차도 거쳐야 했는데 이 역시도 오래 걸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일본 공기를 마시기까지는 50분 가까이 걸렸다. 우리가 일본에 도착한 날은 2월 27일(월요일). 이제 한 주간 일본에서 대회를 취재해야 하니 ‘시작’인 셈이었는데, 이상하게 버스에 올라타니 ‘미션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타에서 우츠노미야로는 버스로 이동했는데 도부호텔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더 걸렸다. 많고 많은 도시 중에 우츠노미야에서 대회가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2021-2022시즌 B.리그 우승팀 우츠노미야 브렉스의 연고지이기 때문이다. 파이널에서 함께 붙은 류큐 골든킹스(준우승팀)의 연고지는 오키나와인데, 상대적으로 체육관 규모가 큰 오키나와 아레나가 최종 격전지로 선정됐다. 우츠노미야에서 KGC는 예선 1경기, SK는 예선 두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애초 계획대로 홈&어웨이였다면 KGC가 올 일이 없는 도시였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여러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홈&어웨이의 장기 계획이 틀어지고 5일간의 소규모 대회로 재편되며 KGC도 우츠노미야로 향하게 되었다.
이동하면서 한가지 든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딱 한 번 장거리 이동을 하면 되지만, 이걸 시즌 내내 정기적으로 한다면? 단순히 비행기로 국경을 넘는데 그치지 않고, 나라마다 다른 입국 신고 절차를 겪어야 하며, 내린 뒤에도 최소 1~2시간의 거리를 더 달려야 하는 일정을 매달 겪어야 한다면 그 피로감이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슈는 이 대회가 끝날 때까지 대회 관계자, 구단 사무국, 코칭스태프, 선수단 사이에서 계속 언급됐다. 앞으로 한국을 찾는 상대 팀도 마찬가지로 한국에 입국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안양, 잠실 등으로 이동했다가 1경기를 치르고 돌아가야 하는데 그 거리와 피로감이 상당할 것이다. 마카오에서 열린 슈퍼8이나 터리픽12의 경우 프리시즌 토너먼트였기에 이런 걱정이 없었지만 주최 측도, 참가팀들도 이런 부분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고 답사를 하는 등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새삼 이 일을 밥먹듯 해오는 유로리그와 유로컵 참가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규시즌 일정이 KBL이나 B.리그만큼 타이트하진 않지만 말이다. 앞으로 EASL 리그가 어떻게 운영될지는 확실치 않다. 중국 CBA팀이 참가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 경우 KBL도 일정 수립에 있어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건 외국선수들은 오히려 피로를 덜 호소했는데, G리그를 경험했던 오마리 스펠맨이나 해외리그 경험이 많은 대릴 먼로는 구단 관계자 측에 “이 정도 이동은 어느 리그에서든 늘 있었던 일”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후문이다.
일본에 참 오랜만에 다녀왔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일본을 갔을 때도 KGC와 DB의 전지훈련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짧은 일정이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일본은 쳐다도 못 볼 곳처럼 여겨졌다. 선수들 역시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예정대로면 2022년 가을에는 다들 전지훈련을 일본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이때까지도 코로나19와 자가 격리 등 이슈가 끊이지 않아 철회한 구단이 많았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현장을 찾은 필리핀, 대만 기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본다’는 인사가 기자석과 백스테이지에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 EASL이 끝난 직후에는 야구대회(WBC)가 열릴 예정이었다. 대만 스포츠 일간지에는 ‘농구 전담’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온 김에’ 농구를 보고 야구로 넘어간 기자들도 있었다. 한 대만 일간지 기자는 “냉정히 봤을 때 우리 팀의 경기력은 어땠나?”, “앞으로 경쟁력이 있을 것 같나?”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 역시 P.리그의 독특한 외국선수 제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필리핀 기자들도 꽤 많이 왔는데, 퀴니토 헨슨 해설위원은 “외국선수 수준이나 리그 일정, 부상자 등으로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니 뚜껑은 열어봐야겠지만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EASL의 소식지를 편찬하는 지오르지오 간돌피 씨와도 연락이 닿았다. 그는 FIBA 공식 매거진이었던 ‘어시스트’의 편집장이면서도 여러 권의 농구 전술서를 펴냈다. 현존하는 농구 기자 중 전술책을 펴낸 몇 안 되는 인물이라 10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직접 연락을 주고받고, 심지어 “결승에 두 팀 모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말까지 들으니 구름 위에 올라있는 기분이었다.
농구도 마찬가지로, 서로 간에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각자의 농구 스타일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는 KBL팀들의 패스워크와 볼없는 움직임, 지역방어를 깨는 움직임 등에 대한 좋은 평가가 많았다. 출국 전만 해도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지만, 오마리 스펠맨과 대릴 먼로, 자밀 워니와 리온 윌리엄스의 상호작용이 잘 이뤄지다보니 KBL 팀들의 조직력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특히 사우스베이 드래곤스를 이끈 브라이언 고지안 감독은 복도에서 마주친 내게 “아주 훌륭한 무브먼트를 보여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뛴 거도 아닌데, 올림픽 무대를 지도했던 베테랑 감독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교류’는 코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일 EASL이 계획대로 홈&어웨이로 진행된다면, 나는 연맹과 구단의 젊은 마케팅 실무자들도 동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구단마다 문화가 있고 마케팅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KBL이 더 잘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벤치마킹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볼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날, KBL 김희옥 총재는 “B.리그의 시마다 신지 총재가 이 체육관에 꼭 와보라고 계속 강조하더군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이번에 꼭 가볼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체육관에 가보니 그렇게 자랑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일행들이 코트를 처음 보자마자 “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2021년 3월에 완공된 이 체육관은 류큐 골든 킹스의 홈구장이다. 최신식 구장답게 대형 전광판, 스위트룸 등이 잘 갖춰졌다. 1만 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이곳의 스위트룸은 복도부터 고급 호텔에 온 느낌을 주었고, 전망도 상당히 좋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조명인데, NBA처럼 코트에 집중되어 있었다. 양희종은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만 딱 집중될 수 있는 조명 같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친정인 점프볼이 가장 많이 생각났는데, 사진 기자들이 여기 온다면 참 찍을 맛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화장실이다. 지난 1월, 로스엔젤레스 출장을 갔을 때 LA 클리퍼스 구단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클리퍼스는 ‘독립’ 준비가 한창이었다. 2021년 9월부터 잉글우드 지역에 새 홈구장 인트윗 돔(Intuit Dome)을 짓고 있었는데, 2024-2025시즌부터 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클리퍼스 직원들은 이 구장이 스티브 발머 구단주의 숙원 사업이라 했다. 기존 크립토닷컴아레나는 LA 레이커스를 비롯해 여러 구단이 사용하다 보니 클리퍼스는 늘 결정권에서 후순위에 밀렸다고 한다. 좋은 입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스케줄 배정도 안 좋았고 이를 조정할 때도 불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바로 인트윗 돔인데, 건설에 필요한 부지 매입비용까지 발머 구단주가 이른바 ‘현질’을 통해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발머 구단주가 구상한 인트윗 돔은 전 세계 체육관 중 가장 많은 화장실을 갖춘 구장으로 등록될 예정이다. 그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느라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겪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당장 메디슨 스퀘어가든이나 크립토닷컴 아레나만 가도 하프타임에 화장실 대기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편이다. 오키나와 아레나는 만명을 수용하기에 적당한 화장실을 두고 있었다. 어딜 가든 기다리는 일 없이 사용할 수 있었고, 관리가 잘 된 덕분인지 넓고 깨끗해 앉았다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은 구단 용품점이다. 1층에 위치한 구단 용품샵은 어느 NBA 구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제품도 다양했다. 2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저지에 입이 쩍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을 찾는 팬들마다 골든 킹스 유니폼을 입고 온 것이 눈길을 끌었다. 역시나 직원이 많아 오래 줄 서는 일 없이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팬들을 위한 라운지는 백보드를 재활용한 테이블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는 오는 8월 FIBA 농구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 농구월드컵은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분산 개최되는데 이 정도 시설이면 충분히 내세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환경
EASL이 유로리그나 유로컵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리그마다 서로의 환경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환경’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기질, 업무 처리 방식, 농구 인기와 저변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유로리그도 창설 초기만 해도 각기 다른 일 처리 방식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정말 수많은 나라들이 동시에 관여하는 대회이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실무자들이 NBA 사무국 및 구단에 파견되어 운영 및 미디어 응대 방식을 배우고 벤치마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고, 따르기까지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진통이 있었을 것이다. 2009년 7월, 이탈리아 베네통 트레비소 운영팀장 출신의 마우리지오 게라르디니는 토론토 랩터스 어시스턴트 제네럴 매니저로 근무한 뒤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가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꼽은 것은 바로 ‘준비’였다. 당시 그는 “NBA는 모든 것에 ‘즉흥’이 없다. 모든 것들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다. 일을 하면서 나는 각 구단이 공유하는 지침이 얼마나 정확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견고하게 잘 짜여 있는지에 대해 매일 놀랐다”라고 적기도 했다.
EASL은 아직 NBA는커녕 유로리그에도 비교할 수 없다. 이제 첫 해를 치렀고, 그마저도 코로나19와 여러 이슈로 반쪽짜리 대회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들이 우려한 부분은 바로 ‘조화’와 ‘협력’이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업무처리 방식을 배워왔기에 어우러지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둘러싼 구단들의 이해관계도 조율해야 한다. 예컨대, “쟤네는 융통성이 없어”, “저 나라는 너무 느긋해”, “어우, 저 나라는 왜 이리 항상 급한거야?”와 같은 부분까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리 잡는 것은 1, 2년으로 부족할 것이다. 한 조직에 ‘문화’라는 것이 생기는 데도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농구 교류’는 이미 15~20년 전부터 아시아의 각 리그가 필요로 했던 부분이었다. 아시아쿼터 제도만으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본격적으로 빌드업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장기투자라고 생각하고 변수와 불안 요소를 제거해가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조화’의 성과를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팀은 바로 베이 에어리어 드래곤스가 아닐까 싶다. KGC가 SK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한 시간 전, 베이 에어리어 드래곤스는 류큐 골든 킹스를 90-70으로 꺾고 대회 3위를 차지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질문 경쟁이 어찌나 치열한지 내게 질문순서가 오지 않아 답답했다. 복도까지 쫓아가 마침내 브라이언 고지안 감독에 물었다. 주제는 바로 ‘조화’였다. 이 팀은 감독(호주), 코치(필리핀, 미국)는 물론이고 선수들의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홍콩, 중국, 대만, 호주, 미국, 캐나다 등에서 선수들이 모였다. KBL에서 뛰었던 앤드류 니콜슨은 캐나다 국적이었고, 마일스 포웰은 미국인이었다. 이들의 연고지는 홍콩인데, 프로리그가 없었기에 필리핀 커미셔너스 컵에 ‘게스트’ 자격으로 참가해 조직력을 키워왔다. 그리고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도 일궜다.
고지안 감독에게 “국적이 다양하다는 것은, 서로의 행동 습관이나 농구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의미일 텐데 어떻게 다가갔는가?”라고 묻자, 그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처음에는 정말 불편했어요. 다들 특색이 있어요. 표정과 행동 모든 것이 달라요.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한 나라도 있고, 그러지 않은 곳도 있죠. 그거 아세요? 우리가 뭉칠 무렵에는 인종차별과 종교 문제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부딪치기도 자주 부딪쳤죠. 하지만 선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코트에 올라설 때는 다 두고 오라고요. ‘농구’로만 이야기하자고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게 농구잖아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지만 경기를 하면서 하나가 됐습니다. 훌륭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지안 감독의 말이다. 그는 EASL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첫 경기 패배가 약이 됐어요. 계속 나아졌거든요. 다른 리그 팀들과 겨루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승패를 떠나서, 코칭을 떠나서 농구인으로서 배울 수 있는 대회였습니다. 아직 EASL에 참가한 대다수는 이런 과정이 어색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어요. 유럽에서 이런 교류는 무척 흔한 일이죠. 아시아도 결국에는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궁여지책(窮餘之策)
주최 측 입장에서는 우여곡절(迂餘曲折), 밖에서 봤을 때는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던 대회였다.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서는 대회를 치러야 했던 EASL 측에서는 간신히 일정을 만들어냈지만, 밖에서 봤을 때는 준비가 100% 안 된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 8팀이 2개 조로 나뉘어 진행되는 대회인데, 팀당 2경기밖에 치르지 않았고 결승에 진출할 조1위 팀도 승률이 아닌 다득점으로 가리다 보니 꽤 많은 힘을 들여야 했다. 1위를 하고도 안심할 수 없어 마지막까지 점수 차를 더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팬 입장에서는 계속 화력이 유지되니 즐거울 수도 있었겠지만, 빠듯한 일정까지 겹쳐 선수들은 힘든 면이 있었을 것이다. 142-87로 필리핀 산미겔을 꺾은 KGC가 바로 그런 예였다. 이번 대회는 시즌 중에 열렸다. 참가팀 대부분이 시즌 일정과 병행했는데, 심지어 직전에 FIBA 월드컵 예선도 있어 대표선수들은 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은 FIBA 패널티로 인해 출전하지 않았다.) 대만 푸본 브레이브스는 KGC보다 하루 늦은 경기 전날 도착해 더 피로감을 느끼는 듯 했다. 이들 역시 출국 직전 주말에 백투백 경기를 치렀는데, 설상가상으로 주력 선수 1명이 다친 탓에 일정 소화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 그런가 하면 필리핀 TNT 트로팡 기가는 대회 개막전에서 MVP 출신 준마 파야르도가 무릎을 다쳐 재빠르게 대회를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EASL의 청사진대로라면 아마 이런 일은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계획대로 홈&어웨이로 정착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FIBA 월드컵 브레이크와 각국 명절과 휴가철 등 군데군데 숨어있는 요소들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현지에서 KBL팀들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수비를 강조하는 리그답게 조직적인 수비가 다른 리그 지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동시에 공격에서도 볼 없는 움직임과 패스워크 등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다보니 더 원활했던 면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KBL은 출범 초기부터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어왔다. 점진적으로 출전 쿼터를 줄여 2019-2020시즌부터는 2명 보유 1명 출전으로 자리 잡았는데, 오랜만에 EASL 덕분에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애초 스펠맨-먼로 라인업은 결성(?) 당시부터 기대를 모았다. 개인적으로도 먼로의 게임 운영을 기대했다. 2022년 여름 미국서 열린 TBT(더 바스켓볼 토너먼트)에서도 먼로는 리딩 가드 역할과 로우포스트 공략을 동시에 하는 놀라운 BQ를 보였는데, KGC에서도 트리플더블 한차례를 포함해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김상식 감독은 대회 시작 전부터 두 선수를 불러 모아 “이번 대회는 거의 풀 타임을 뛰게 될 것”이라고 고지했다. 두 선수 역시 함께 뛴다는 것을 기대했고, 실제로 경기가 잘 풀리다 보니 서로 즐기는 듯했다. 오히려 교체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을 정도.
덕분에 오세근은 대회 내내 무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김상식 감독도 포스트시즌에 대비해 최대한 아끼겠다는 생각이었다. SK도 워니-윌리엄스 조합이 잘 풀린 덕분에 최부경을 아낄 수 있었다. 윌리엄스가 궂은일을 해주고, 세컨찬스 득점을 노린 덕분에 워니도 득점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3경기 평균 24.3점을 기록했다. 팬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외국선수 2명을 동시 기용하는 것에서 오는 혜택(?)에 중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애초 외국선수 비중을 꾸준히 줄여온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이것을 EASL만의 매력 정도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국제무대는 우리 것, 우리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내 농구인기와 달리 필리핀과 중국 등 큰 시장에서의 농구 시청자는 어마어마하다. SK와 KGC의 두 국내 에이스 김선형과 변준형은 해외에도 많은 인기를 자랑했다. 이미 KBL에 오기 전부터 국가대표로 유명했던 렌즈 아반도도 필리핀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KGC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EASL 우승 영상의 경우, 전체 2만 5000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그 중 필리핀 시청자가 무려 54.3%였다. KGC만큼 눈에 띄진 않지만, DB도 알바노가 썸네일에 등장한 영상의 경우 필리핀 시청자가 늘고 있다. 이들에게 구단을 더 알리고 많은 유입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노마스크 시대를 맞는 등 코로나19의 피로감에서도 해방되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KBL은 외국인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불편하고 폐쇄적이다. 일주일 반짝 하는 대회가 아니라 시즌 내내 노출할 기회가 생긴다면 구단 브랜드와 선수들을 보다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출될 플랫폼이 확실히 갖춰져야 한다.
#사진_손대범 편집인, EAS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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