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하락률 94%’…시한폭탄 안고 가는 코인원
코인 27% 상장폐지…거래 중이라도 시세 변동 크고 시가총액 적은 단독 상장 코인 유념해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이 전례 없는 동시다발적 위기에 처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발단이 된 코인의 상장처로 찍힌 데다 상장을 대가로 뒷돈을 챙긴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대중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이 정도지만, 독단적 행보로 업계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5대 거래소가 만장일치로 상장폐지에 합의한 코인을 홀로 재상장시켰기 때문이다.
코인원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거래소는 조금도 지체 없이 바쁘게 굴러가고 있다. 매일 24시간 초 단위로 하루 951억원(4월12일 코인마켓캡 기준)의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암호화폐 발행업체에 기술자문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광풍과도 같은 투자 열기 속에서 코인이 얼마나 올랐나, 떨어졌나에만 관심이 매몰돼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거래소가 상장 코인을 대대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앞으로 형사사건에서 무슨 무슨 코인을 끊임없이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인 250여 종 중 67종 상폐...119일 만에 퇴출되기도
시사저널은 2017년 5월부터 올 4월까지 6년간 코인원에 상장된 암호화폐를 모두 살펴봤다. 해당 기간 상장된 코인은 총 250여 종이다. 이 중 88종의 코인이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이력이 있었다. 3월29일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일어난 납치살인 사건의 화근으로 지목된 코인 퓨리에버(PURE)도 그중 하나다. 2020년 11월 코인원에 상장된 퓨리에버는 3월3일 "프로젝트 외부평가 리포트 미제출"을 이유로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이후 2주일 만에 해제됐지만 납치살인 발생 후인 4월7일 다시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코인원 측은 재지정 이유를 두고 "백서 및 프로젝트팀에서 공개한 자료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의혹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부정적 기사가 쏟아지니 뒤늦게 재검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짙다.
거래소는 암호화폐를 퇴출시키기 전에 유의종목으로 지정한다. 뚜렷한 성과가 없거나 최소한의 거래도 이뤄지지 않는 등 이상 신호가 보일 때 지정 공시한다. 유의종목 지정의 명목은 투자자 보호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종목에 대해 재고해 보고 미리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 선제 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 보면, 유의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가 빠를수록 거래소가 그만큼 시장성이 입증되지 않은 코인을 성급하게 상장시켰다고 볼 소지도 있다.
콘텐토스(COS) 코인은 상장된 지 불과 14일 만에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단기간의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시세조작 위험성이 증가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리진 프로토콜(OGN) 코인의 경우 "거래 지속성과 최소한의 거래량 미달"로 49일 만에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두 코인은 지정 사유가 해소돼 지금은 거래 중이다.
코인원이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코인 88종 중 67종은 상장폐지로 이어졌다. 4월 말 상장폐지가 예정된 세럼(SRM), 베이직(BASIC), 오미세고(OMG) 등 3종을 더하면 총 70종으로 전체 코인의 약 27%다. 70종의 평균 거래 기간은 상장폐지일이 확인되지 않는 코인 4종(다이, 스톰, 노시스, 크레도)을 제외하면 656일로 집계됐다. 2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이 중 14개 코인은 상장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디엠엠 거버넌스(DMG) 코인은 운영 중단으로 시세조작 가능성이 높아져 200일도 못 버티고 퇴출됐다. 뮤지카(MZK) 코인은 119일 만에 상장폐지돼 최단 기간을 기록했다.
1년도 못 버틴 코인 14종…일부 재상장 논란도
국내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대표 격인 위믹스(WEMIX) 코인은 2021년 12월29일 코인원에 상장됐다. 게임업체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는 '게임을 하면서 암호화폐를 벌 수 있다'는 개념을 내세워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시가총액이 3조56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인원을 비롯한 국내 주요 거래소 5곳으로 구성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가 "유통량 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상장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위믹스는 상장 330일 만인 2022년 11월24일 코인원에서 거래 종료됐다.
그런데 코인원은 약 3개월 만인 올 2월16일 다시 위믹스를 단독 상장시켰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닥사의 합의를 깨뜨린 결과여서 업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암호화폐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출범한 닥사가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을 것이란 우려가 짙었다. 차명훈 코인원 대표는 위믹스 재상장에 대해 3월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원칙과 소신에 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가상자산 프로젝트에도 투자자 보호 노력 등 전반적인 운영에 참고할 수 있는 케이스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기 의혹이 불거진 퓨리에버가 납치살인 사건마저 초래하면서 빛이 바랬다.
상장폐지나 유의종목 지정이 아니어도 안심할 수 없다. 루나 코인은 3년 동안 코인원 상장 목록에서 거래량 상위권을 차지하며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6월 상장폐지됐다. 이 코인은 다름 아닌 암호화폐 시장을 혹한기로 몰고 간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이다. 권도형이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이 50조원대에 달했다. 전 세계 암호화폐 10위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약 일주일 만에 시세가 99.99% 떨어지는 극단적인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형 암호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우즈캐피털과 암호화폐 대출업체 셀시어스 네트워크가 파산했다. 셀시어스가 떠안은 부채는 90억 달러(약 11조9000억원)에 달했다. 절망적인 테라-루나 사태에 한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매개체가 바로 코인원이다. 2019년 5월 루나를 전 세계 최초로 상장시켰기 때문이다. 코인원은 루나 상장 한 달 후에 자매 코인인 테라도 상장시켰다. 달러와 1대1 가치를 갖는 스테이블 코인 개념으로 발행된 테라는 가치 유지를 위해 루나에 의존하는 구조를 취했다.
코인원은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고 약 한 달 후인 지난해 6월1일 두 코인을 상장폐지했다. 당시 이를 두고 늑장 조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비트와 빗썸은 각각 5월20일, 5월27일 거래를 종료했다. 시기상으로는 불과 며칠일 차이지만 단 하루 차이라도 간과하기 힘들다. 암호화폐 거래는 24시간 가능하고 시세의 등락 폭도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 보호는 뒷전이고 수수료를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불거졌다.
루나 최초 거래소 코인원, 늑장 상폐로 뭇매
실제 지난해 10월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닥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테라-루나 사태로 코인원이 벌어들인 수수료는 3억7300만원으로 나타났다. 업비트는 62억7700만원, 빗썸은 19억5600만원으로 더 많았다. 최근 3년으로 넓혀보면 코인원이 상장폐지된 코인으로 거둔 수수료는 79억원에 달했다.
올 들어 코인원에서 상장폐지 됐거나 폐지가 예정된 코인은 16종이다. 이 중 11종은 2020~21년 상장됐다. 이 시기는 브로커에 의한 상장 비리가 횡행했던 시기다. 검찰은 4월11일 "암호화폐 상장 청탁을 명목으로 금품을 주고받은 코인원 전 임직원 2명과 상장 브로커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코인원 전 상장 담당 이사 전아무개씨는 2020년부터 2년8개월간 상장 브로커 고아무개씨와 황아무개씨로부터 총 20억원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그 대가로 국내에서 발행된 소위 '김치 코인' 29종이 코인원에 상장됐다. 이 중에는 퓨리에버와 함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형제가 시세조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피카도 포함돼 있었다. 상장 비리가 시작됐던 2020년 한 해 동안 코인원에 상장된 암호화폐는 문제의 코인 29종을 비롯해 총 106종이다. 모든 기간 통틀어 가장 많다.
상장폐지나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코인을 제외하면 현재 코인원에서 정상 거래 중인 코인은 170종이다.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장담하긴 이르다. 단독 상장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오직 해당 거래소에서만 거래되는 코인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발행업체는 투자 접근성 향상과 거래 활성화를 위해 거래소를 넓혀 나간다. 상장된 거래소가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신뢰성과 안정성이 확보됐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단독 상장 코인은 상장폐지되면 거래할 수 있는 곳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 위험성이 클 수밖에 없다. 공개 매매가 불가능한 '디지털 조각'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게다가 단독 상장 코인은 해킹과 시세조작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조작 세력이 거래소 한 곳만 통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피카와 퓨리에버도 코인원 단독 상장 코인이다.
코인원에서 거래 중인 코인 170종이 닥사 구성원인 다른 거래소 4곳(업비트, 고팍스, 빗썸, 코빗)에도 상장돼 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4곳 중 어디에도 상장돼 있지 않은 코인이 66종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해외 거래소에 상장돼 있거나 국내 다른 거래소에 상장됐다가 폐지됐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시점 기준 국내 주요 거래소로 좁혀보면 상장 거래소는 코인원이 유일하다.
단독상장 66종 중 22종, 1원 안팎까지 폭락...최고 하락률 99.99%
가격 변동성(MDD)은 최고점 대비 최대 하락률을 뜻하는 지표다. 시세 변화 폭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단독 상장 코인 66종을 대상으로 최초 상장일(코인원보다 빠른 상장 거래소가 있으면 해당 거래소 상장일 기준) 이후 지금까지 MDD를 계산해 봤다. 최저점은 최고점을 찍은 후에 나타난 시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MDD가 평균 94%로 나타났다. 100원짜리가 6원짜리로 폭락한 것이다. 메티스(MTS) 코인의 경우 최고가 약 5만4400원에서 1원 밑으로 떨어졌다. MDD 99.99%다. 메티스를 포함해 22종의 코인은 시세가 최저 1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하락 폭의 절댓값이 가장 큰 코인은 크러스트 네트워크(CRU)다. 글로벌 거래소 상장 이후 2021년 4월 최고 16만5095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7월 966원까지 곤두박질했다. 16만4129원(99.4%) 폭락했다. 코인원에는 2021년 10월 단독 상장했는데 이후 4만원대까지 올랐다가 지금까지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는 1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변동성이 큰 만큼 위험 폭도 크다.
투자 안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시가총액이다. 암호화폐의 경우 발행량과 유통량이 다르기 때문에 보통 현재 시세에 유통량을 곱해 시가총액을 계산한다. 코인원 단독 상장 코인 66종 가운데 메티스, 엔에프유피(NFUP), 아이스타더스트(ISDT) 등 3종은 시가총액이 1억원 미만이었다. 금융위원회는 "시가총액 1억원 이하 소규모 가상자산은 급격한 가격 변동과 유동성 부족 등으로 시장 위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의했다. 금융위원회의 '2022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모든 단독 상장 암호화폐 389종 중 132종(34%)은 시가총액 1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시가총액이 적고 MDD가 큰 코인은 거래 기간이 오래됐다 해도 투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상시 감시한다"는 코인원, 사건 터지자 전수조사 나서
코인원 홍보팀 관계자는 단독 상장 코인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장 되려면 크게 9가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며 "만약 유의종목 지정 기준에 부합하면 충분한 기간을 두고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일단 코인원은 최근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고개를 숙였다. 코인원 측은 4월13일 차명훈 대표 명의로 낸 입장문을 통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해당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진 가상자산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코인원의 '미운털'이 된 퓨리에버에 대해 수사 당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조사1부(이승형 부장검사)는 4월11일 코인원 상장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퓨리에버는 대표적인 김치 코인으로 발행업체의 재정 상황이 불량하지만 단독 상장됐다"고 밝혔다. 시세조종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2020년 11월 코인원 상장 직후와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퓨리에버 시세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51)∙황은희(49) 부부와 피해자 A씨(48)도 퓨리에버를 둘러싸고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해당 코인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자 책임 소재를 놓고 서로 민형사 소송을 벌여왔다. 유씨 부부는 A씨와도 가까웠던 이경우(36)에게 7000만원을 건네며 범행을 부추겼고, 이경우는 황대한(36)과 연지호(30)를 시켜 A씨를 납치∙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피의자 5명의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된 2010년 이래 단일 강력사건으로는 최다 규모다. 경찰은 피의자 5명 외에 관련 혐의를 받는 2명을 추가해 모두 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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