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앞 ‘365일 생떼 시위’… ‘악용되는 집시법’ 개정 시급

■ 막을 길 없는 편법·불법 시위
고성능 확성기·자극적인 행위
집회용품 현수막 개수 무제한
변칙적인 방법으로 장기 시위
현행법 공백·느슨한 공권력 등
악의적 불법·편법 시위 부추겨

장기 편법 시위 몸살 대기업 사옥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와 시위로 기업, 보행자, 인근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 시위용 트럭과 천막이 세워져 있다(왼쪽). 같은 시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앞에는 현대자동차 측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천막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오른쪽). 박윤슬 기자

대기업 사옥 주변 등에서 편법·불법적인 막무가내식 ‘생떼 시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시민과 기업 경영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지만 법적 공백과 느슨한 행정규제로 인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위 주체가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변칙적인 방식으로 현행법의 허점과 미온적인 공권력 적용을 악용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현실적인 대안은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기본권과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보다 적극적인 행정조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 서초사옥, 현대자동차그룹 양재 본사, KT 광화문사옥 등 대기업 사옥 앞에는 고성능 확성기와 자극적인 퍼포먼스, 현수막을 동원한 무분별한 시위가 계속돼 기업은 물론 인근 주민과 보행자들이 피해를 겪고 있다. 집시법에 시위 제한 기준과 처벌 규정이 있지만, 시위·집회 주최 측이 규제 사각지대를 교묘히 찾아가며 처벌을 회피하는 각종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수막 게시다. 옥외광고물법상 관할 행정청에 신고하지 않은 현수막은 불법이고 철거 대상이다. 하지만 집회용품으로 신고된 광고물은 단속에서 배제된다. 현수막 개수 제한이 없고 집회 신고 기간에는 집회가 실제 열리지 않더라도 단속규정이 불명확해 철거도 쉽지 않다. 법제처가 2013년 ‘실제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현수막을 표시·설치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현장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성 현수막 문제가 심각하다”며 “기업이 가처분 신청을 해 승소해도 일부 문구만 바꿔 현수막을 다시 내걸곤 한다”고 말했다.

소음 규제 역시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고 소음은 1시간 동안 3번 이상 기준을 넘길 때, 평균 소음은 10분간 연속 측정해 기준을 넘길 때 단속이 가능하다는 집시법 규정이 악용되고 있어서다. 일부 시위대는 고성능 확성기로 1시간에 2번만 기준을 초과하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낸 후 나머지 5분간은 음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경찰 단속을 피하고 있다.

1인 시위는 집시법과 소음 규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기업 출입문 등에서 기준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는 사례도 있다. 지자체 허가 없이 대기업 주변 도로나 인도에 설치된 천막도 불법이지만 지자체에서 철거 계고장을 발부해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법적 미비점을 막을 수 있는 집시법 개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20건이 넘는 집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집회·시위에 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하지만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위는 규제해야 한다”며 “악의적 1인 시위 등 현재 법 테두리에서 벗어난 편법·불법 시위는 법 개정을 통해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