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일까, 마지막일까…톱10 선발 속 ‘국내파 바람’

안승호 기자 2023. 4. 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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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송명기 나균안 곽빈 문동주. 정지윤 선임기자 연합뉴스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던 지난 3월 일본 도쿄돔 중계석에서 일본 채널 해설진으로부터 KBO리그의 외국인투수 비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리그는 외국인 선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리그의 레전드 투수 출신이기도 한 정민철 위원으로서는 답하는 게 속상할 수 있는 내용으로, 어쩌면 한국의 야구인이면 누구라도 받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실제 KBO리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종 선발 지표로도 외국인투수들에게 ‘종속’되는 현상을 보였다. 지난해의 경우, 규정이닝(144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 톱10을 들여다보면 키움 안우진(1위), SSG 김광현(2위), KT 소형준(10위) 등 3명을 빼고 모두 외국인투수였다. 대부분 팀이 1, 2선발로는 외국인투수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지표 중 하나였다.

이 같은 흐름에 이미 익숙해지고 있던 사이, 올해 봄바람은 살짝 다르게 불고 있다.

아직 시즌 ‘극초반’으로 훗날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7일 현재 각팀 1~3선발이라면 3차례 정도는 선발 등판을 마친 가운데 선발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평균자책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내파 투수가 6명에 이르고 있다.

평균자책 0.47의 안우진이 여전히 맨 앞으로 나서 있고, NC 송명기(3위), 두산 곽빈(5위), 롯데 나균안(7위), 키움 최원태(8위), KIA 양현종(9위) 등이 그 안에 포함돼 있다.

외국인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반사 효과로 작용한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화와 두산, SSG, NC 등 4팀이 외국인 선발 한명 부재 상태로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또 롯데 스트레일리와 반즈, 삼성 수아레즈, LG 켈리 등 몇몇 투수들은 아직 지난해만큼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선발 각 부문 지표 톱10에 새롭게 가세할 만한 선수를 살피자면 국내파 투수들도 적잖이 있다. 예컨대 5선발로 시즌을 맞아 아직 규정이닝의 경계를 오가는 한화 문동주, 그리고 어깨 부위 염증으로 휴식 모드에 들어가 있는 SSG 김광현 등이 곧 순위표에서도 고개를 들 이름들이다.

2023년 한국야구의 봄은 투수들의 눈물로 맞았다. WBC에 출전한 투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부족함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준비 과정에서 문제를 보이며 제기량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난조를 보이고 말았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야구의 마운드가 무너지는 흐름이었다.

불과 한 달 전의 이런 분위기를 고려하면, 분명 반전이다. 무엇보다 선발 마운드에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한국야구에 일단은 선물이 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안정감을 얻으며 NC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우완 송명기와 ‘피칭 아티스트’로 재탄생하고 있는 롯데의 실질적인 에이스 나균안이 시즌 전 구도를 고려하면 낯선 이름이다. 여기에 안우진, 문동주와 함께 구위로는 ‘우완 빅3’를 이룰 두산 곽빈이 제구력과 변화구를 업그레이드시키며 주요 선발 그룹으로 올라서고 있다.

각팀이 외국인투수진을 재정비를 하는 시간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도 보인다. 이른바 ‘외풍’이 다시 불 시간이다. 그러나 국내파 투수들이 강해졌다면, 또 강해진다면 다시 불 바람에 자리를 내줄 일은 없다.

지금 떠오르는 국내파 투수들에게 필요할 말 하나.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 속의 마지막 대사처럼.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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