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주의 내려놓고 삼류의 길 걷는 수원 삼성, 말뿐인 비전-레전드도 미래도 사라진 현실

김가을 2023. 4. 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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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일등주의를 내려놓고 몰락의 길을 걸은 결과는 역시나 새드엔딩이었다.

수원 삼성(대표이사 이 준)은 '17일 오후 이병근 감독과 클럽하우스에서 면담을 통해 경질을 통보했다. 이번 주말 FC서울과 슈퍼매치를 지휘할 감독 대행은 내부 협의를 거쳐 18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원은 한때 K리그를 대표하던 '리딩 클럽'이었다. 1995년 창단해 1996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리그에서 4차례(1998, 1999, 2004, 2008년), 대한축구협회(FA)컵에서 5회(2002, 2009, 2010, 2016, 2019년) 우승을 차지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해 '레알수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추락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수원은 2014년 삼성그룹 삼성스포츠단이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제일기획은 2014년 수원 삼성과 삼성 썬더스(남자농구), 삼성 블루밍스(여자농구)를 편입했다. 2015년 삼성 블루팡스(프로배구), 2016년 삼성 라이온즈까지 삼성의 모든 프로스포츠를 흡수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일등을 내려놓고 몰락의 길을 걷는 전통의 명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에 비해 삼성그룹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였다. 구단을 운영하는 컨트롤타워가 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옮겨지면서 스포츠는 경영합리화 대상 계열사가 됐다.

철학과 기조가 180도 바뀌었다. 삼성은 그동안 '일등주의'를 표방하며 '윈-나우'를 외쳤다. 이제는 아니다. 좋은 성적 이상으로 마케팅을 통한 수익 창출을 새로운 목표로 잡았다. 당시 '국내 스포츠산업이 선진국처럼 고도화, 산업화 되고 있다. 스포츠단 운영이 선수운용관리와 경기력 향상 외에 전문적인 팬 관리, 마케팅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제일기획이 쌓은 마케팅 선진화 작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스포츠단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당위성이나 결과물을 찾기 힘들다. 그저 살림을 줄이기 급급했을 뿐이다. 선수보강에 지갑을 선뜻 열지 못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2022년 K리그 선수 연봉 지출 현황에 따르면 수원은 지난해 88억7583만9000원(평균 2억3255만5000원)을 투자했다. 11개 구단(김천 상무 제외) 중 8위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수원은 불과 세 시즌 만인 2016년 창단 뒤 처음 파이널B 무대로 추락했다. '전통의 명가' 수원이 몰락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3-6-8-8-6-1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창단 후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PO) 나락으로 떨어졌다. FC안양과의 처절한 싸움 끝 가까스로 잔류를 확정했다.

올 시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고된 재앙이었다. 개막 전 '막내 에이스' 오현규를 스코틀랜드 리그 셀틱으로 내보냈다. 오현규는 이적료 300만 유로를 남겼다. 하지만 그 돈은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영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수원은 개막전부터 '승격팀' 광주FC에 0대1로 발목을 잡혔다. 개막 7경기 연속 무승(2무 5패)이란 역대급 부진에 빠졌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위기를 위기로 인식도 하지 못하는 암울한 현실

더 큰 문제는 수원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원은 최근 '프런트 축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구단 내 일부가 모든 루트를 손에 쥐고 일을 처리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매끄럽지 못한 구단 운영 속 팬들은 분노를 토했다. 최근 '야망이 없는 프런트, 코치, 선수는 당장 나가라. 수원은 언제나 삼류를 거부해왔다', '몇 년째 선수단 뒤에 숨는 프런트', '프런트 연봉은 업계 상위, 구단 운영은 최하위' 등 거센 말을 쏟아냈다.

수원은 구조적 문제를 배제한 채 눈앞의 불끄기에만 급급하다. 이 과정에서 감독들만 줄줄이 짐을 싸고 있다. 2018년 12월 제5대 사령탑인 이임생 감독 취임 뒤 5년 동안 세 명의 감독이 불명예 퇴진했다. 이병근 감독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떠나게 됐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과정에서 구단의 역사를 작성했던 '레전드'들이 함께 지워졌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수원 레전드 출신 지도자다. 1996년 수원에 입단해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13년 수원에서 코치를 시작으로 수석 코치, 감독 대행도 맡았다. 지난해 4월 18일 수원의 지휘봉을 잡고 제7대 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취임 1주년을 불과 하루 앞두고 사퇴를 통보 받았다.

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뒤숭숭하다. 과거의 영광은 흘러갔지만, 자존심만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구단 운영을 두고 벌써 별별 루머가 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원은 당장의 대책도 없다. 감독은 잘랐는데, 벤치에 앉을 사람은 정하지 않았다. 수원은 한때 모든 선수가 '꿈의 클럽'으로 꼽던 구단이다. 하지만 현재 수원은 성적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 그저 일류를 거부한 채 스스로 삼류의 길을 걷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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