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적 현수막·소음...기업 사옥 주변은 365일 ‘몸살 중’
마구잡이 현수막 명예훼손 다반사
전문가 “법 보완, 생떼시위 막아야”
무분별한 집회와 시위로 대기업 사옥 주변이 365일 몸살을 앓고 있다. 회사와 경영진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은 기본이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욕설, 장송곡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법적 공백과 느슨한 행정 규제가 대기업 사옥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불법 행태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화, KT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사옥 인근에서는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 등이 불법 시위,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매일 소란이 일고 있다. 시위자들은 현행법의 공백과 미온적인 공권력 행사를 악용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현수막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 전용 게시대 외 장소에 걸린 현수막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철거 대상이다. 그러나 집회 용품으로 신고된 광고물은 단속에서 배제된다. 개수의 제한도 없으며, 집회 신고 기간에는 집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계속 게시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맹점을 이용해 30일 간격으로 집회 기간만 연장해 현수막을 마구잡이로 내거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현란한 색깔의 원색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기업 사옥을 1년 내내 포위해도 집회 신고만 하면 현행법으로는 막기 어려운 셈이다.
법제처에서 2013년 ‘실제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현수막을 표시·설치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냈지만, 구속력이 부족해 현장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집회가 열릴 때만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도록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이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성 문구도 문제다. 해당 문구를 표기한 현수막에 대해 기업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원에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승소해도 효과가 없다. 일부 문구만 변경해 현수막을 다시 게시하기 때문이다.
시위로 인한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집시법상의 소음 규제가 있지만, 이를 회피하려는 각종 꼼수가 동원되고 있어서다. 일부 시위자들은 최고 소음의 경우 1시간 동안 3번 이상 기준을 넘길 때, 평균 소음은 10분간 연속 측정해 기준을 넘길 때 단속이 가능하다는 집시법의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고성능 확성기로 1시간에 2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낸 뒤 나머지 5분간은 음을 소거하는 식이다.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일정 지역에만 정식 집회 신고를 하고, 기업 출입문 등에서는 소음을 유발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례도 있다.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소음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별도 소음 기준이 없어 민원이 발생해 경찰이 개입하는 경우에만 잠시 확성기 볼륨을 낮췄다가 다시 높이기를 되풀이하는 장면도 목격된다. 경범죄 처벌을 받는다 해도 범칙금에 불과하다.
불법 시위 천막의 경우 오가는 차량과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한다.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설치한 천막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도로법 위반으로 지자체에서 여러 차례 철거 계고장을 발부해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천막도 집회 용품이라고 주장하면 지자체에서도 물리적 충돌 우려로 철거하기 어렵다.
법원의 당사자 간 화해 권고, 시위 방식에 대한 금지 가처분 결정, 민·형사상 판결이 내려져 시위 명분을 상실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시위를 이어가는 것도 문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책임이 없다고 판명됐거나, 시위자가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막무가내 주장을 펼쳐도 신고된 집회·시위는 실질적으로 제한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과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볼모로 삼는 ‘생떼 시위’를 막기 위해 집시법 개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20여 건이 넘는 집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충돌하는 다른 기본권 간 균형을 찾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것이 대다수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회 계류 중인 현행 집시법에 대한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은 물론, 갈수록 다양해지는 편법 및 불법 시위 양상에 대응해 이를 제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법규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아울러 법과 원칙, 상식을 지키는 시위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행정 당국도 더욱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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