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원유 마구 사들이는 산유국...중동 ‘脫달러’ 가속

2023. 4. 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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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거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의 대러 제재 동참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유 감산 결정 등 이른바 '탈(脫)미국'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서방의 대러 제재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외신들은 산유국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중동의 다른 대러 제재 회피 노력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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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사우디아라비아 수입량 급증
러, 원유수출량 전쟁이전수준 회복
산유국들 원유감산 등 수익 가속화
서방 노력 불구 대러 제재 무용지물
지난해 12월 러시아 나훗카 인근 코즈미노 터미널에 유조선이 정박해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제재를 가한 가운데, 중동 산유국들이 제재의 틈을 타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사들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로이터]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거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막대한 차익을 얻는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하고 있었다.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의 대러 제재 동참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유 감산 결정 등 이른바 ‘탈(脫)미국’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서방의 대러 제재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데이터 분석 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6000만배럴로 전년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러시아로부터 하루 약 1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만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전무했던 것과 대조된다.

중국과 인도 외에 중동까지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 덕분에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4일 월간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3월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출이 하루 60만배럴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0년 4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다만 서방 제재로 원유 가격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지난달 원유 수출 수익은 전년동기 대비 43% 줄어든 127억달러에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 아람코 등 산유국 기업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수입해 자국 수요에 대응하고, 자국산 원유 및 석유제품은 시장 가격에 맞춰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수익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아람코는 지난해 1611억달러(212조6842억원)의 순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회사가 상장한 2019년 이래 최대 실적이다.

앞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과 관련해 각종 제재를 가해왔다. 지난달 말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산 원유 거래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제한하는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2월 EU는 러시아산 경유와 기타 정제유 상품에 대한 수입 금지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중동 국가들이 대러 제재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밀착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자 노골적으로 중동의 협조를 압박해왔다.

브라이언 넬슨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차관은 지난 1월말부터 사흘 일정으로 UAE를 방문해 대러 제재를 회피 시 UAE에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미 제재 회피를 이유로 UAE의 집단과 개인, 항공 운송 기업 2곳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상태다.

당시 미 재무부는 넬슨 차관이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뿌리뽑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제재를 피하거나 그들을 도울 경우 추가 조치 취하겠다는 의지도 전했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산유국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중동의 다른 대러 제재 회피 노력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쟁 자금 유통을 막고,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약화하겠다는 서방의 노력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이미 산유국들은 이달 초 유가 인상을 목표로한 원유 감산을 발표하며 사실상 러시아에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UAE는 미국과의 오랜 안보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WSJ는 “러시아산 원유 무역은 아마 (미국과 중동 간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다”면서 “서방 제재의 예상치 못한 결과이자,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전했다.

손미정 기자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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