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한열·박종철 열사는 현행법상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이한열·박종철 열사 유공자로 인정하는 '민주유공자법', 20년 넘게 자동 폐기만 반복
민주당 "공정 논란 불거진 교육·취업 지원 삭제 고려"…수정 법안 국회 통과하나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우혜림 인턴기자 =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알려진 고(故) 이한열·박종철 열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해마다 제기된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비영리 단체인 4·16 재단의 박래군 상임이사는 지난 11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4·19와 5·18 외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민주유공자로 보훈을 못 받고 있다"라며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가 법적으로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국가 보훈의 대상이 되는 민주유공자는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국한되기 때문에 6월 항쟁을 비롯한 여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들은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한열·박종철 열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대한민국 현행법은 민주화운동 열사들에 대한 보훈을 얼마나 보장하고 있을까?
현재까지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예우와 보상에 관해 제정된 법률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5·18유공자법) 세 가지다.
이중 국가유공자법(4조)은 4·19 관련 희생·공헌자들을, 5·18유공자법(4조)은 5·18 관련 희생·공헌자들을 각각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그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보훈 대상자가 된 이들은 국가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 존재로서 예우받으며 교육·취업·의료 지원 등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시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유공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422일간 천막 농성을 벌인 끝에 1999년 민주화보상법이 제정되지만, 해당 법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 등을 민주유공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분류했다.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핀 이한열·박종철 열사와 노동운동에 힘쓰다 산화한 전태일 열사 등은 모두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해당한다. 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일회성 보상과 명예회복(복직, 사면) 조치를 규정하며 국가적 예우에 대한 사항은 명시하지 않았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 제정 요구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규정이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국가의 입장에 맞지 않다는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4·19와 5·18 외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희생된 노동자·농민·학생 열사들도 국가 유공자로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유공자법의 핵심이다.
민주유공자법은 15대 국회부터 지속해 발의되어왔으나 법안의 대상 범위가 모호하고 정당 간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현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로 동일 취지의 민주유공자법을 발의했다. 2020년 발의 당시 정무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가 민주유공자로 예우·지원하고 있음에 비추어 그 외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가족을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고 지원하려는 제정안의 입법 취지는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해당 법안이 '운동권 세습법', '셀프 혜택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민주유공자법은 '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법안 내용 중 민주유공자 유가족에 대한 교육과 취업 지원 부분이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녀들에게 혜택을 세습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라는 것이다.
공정 논란에 덧붙여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사람은 9천844명인데, 이들을 모두 유공자로 인정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 열린 국회 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유공자로 예우해주자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겠냐"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우원식 발의안에 따르면 민주유공자법의 적용 대상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상이를 입은 사람 또는 그 가족으로 제한된다. 정무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제정안의 대상이 될 민주유공자 본인은 829명, 그 유가족은 3천233명으로 추정된다.
유가협은 법안의 주요 대상이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이기 때문에 '세습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1년 6월 기자회견문에서 유가협은 "법안의 대상이 되는 열사들은 대부분이 자녀가 없던 미혼"이라며 "자녀가 있더라도 이미 다 성장하여 입학, 취업 혜택을 받을 수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애초 발의안에 담긴 지원 항목과 범위, 절차 등은 국가유공자법의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 국가유공자법(7조)은 생활 수준과 연령 등을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원칙을 규정하며, 교육과 취업 지원 또한 30세 이하의 자녀 1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즉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특혜'라고 불릴만한 지원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가보훈처가 2021년 성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8%가 민주화운동을 보훈의 대상이 되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 헌신'이라고 답했다. 2018년 진행한 조사에서는 성인 1천 명 중 69.2%가 민주화운동 참여자를 보훈 대상에 포함하는 데 찬성했다.
그런데도 민주유공자법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유가협은 지난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입법권자들은 여유로울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시간과 선택지가 없다"라며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우원식 의원실 박기영 보좌관은 "법안 통과를 위해 유가협을 비롯해 정무위원회와 계속 소통하고 있다"라며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여야 간의 합의를 위해 논란이 되었던 교육과 취업 지원 조항 등은 삭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유가협은 법안의 취지가 보상금이 아닌 '명예회복'에 있다고 여러 차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장두영 유가협 사무국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시거나 크게 다치신 분들을 국가유공자로서 예우해달라는 것이 목적"이라며 법안의 쟁점이 보상금 문제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존재한다"라며 "희생자분들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회가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주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woo1020@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가수 에일리, '솔로지옥' 출신 최시훈과 내년 4월 결혼 | 연합뉴스
- 검찰, '법카 등 경기도 예산 1억653만원 유용 혐의' 이재명 기소(종합) | 연합뉴스
- "첫사랑 닮았다" 여직원에 문자 보낸 부산경찰청 경정 대기발령 | 연합뉴스
- 공항서 마약탐지 장비 오류로 30대 여성 생리대까지 벗어 몸수색 | 연합뉴스
-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 | 연합뉴스
- '선착순 4만원' 청년 문화비, 공무원들 미리 알고 쓸어가 | 연합뉴스
- 문신토시 끼고 낚시꾼 위장 형사들, 수개월잠복 마약범 일망타진 | 연합뉴스
- 한국-호주전 도중 통로 난입한 도미니카공화국…훈련 방해까지 | 연합뉴스
- "단 36표차, 다까봐야 안다"…한국계 미셸 박 스틸, 막판 초접전 | 연합뉴스
- 여자축구 샘 커-메위스 커플 "내년에 아이가 태어나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