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너구리·농약 중독 독수리…‘위기의 야생동물’ 4년새 2배 껑충

인지현 기자 2023. 4.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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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만 2483마리 구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쥐 끈끈이에 날개다친 박새 등
지난해 전국서 2만여마리 구조
사육되다 유기된 사례도 많아
너구리‘짬이’ 12년째 체류 중
구조센터 전국 17곳 불과하고
충남센터 상주 수의사 3명 뿐
환경부 “인력·시설 역량 강화”
서천에 보호시설 2곳 건립 추진
지난 12일 충남 예산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수의사가 이틀 전 강풍으로 둥지에서 떨어진 멧비둘기 새끼에게 산소호흡기로 숨을 불어넣고 있다. 박윤슬 기자

예산 =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쥐 끈끈이에 붙잡혀 날개가 부러진 박새, 창애에 걸려 다리가 절단된 너구리,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지난 12일 찾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머물고 있던 야생동물들은 대부분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나 덫으로 몸이 훼손된 상태였다. 충남 공주대 예산캠퍼스 내 부지에 마련된 구조센터에는 당시 50여 마리의 야생동물이 이 같은 이유로 보호 및 치료를 받고 있었다. 구조센터에는 이외에도 개인에게 사육되다가 버려져 야생성을 잃어버린 동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와 떨어져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동물 등 다양한 유형이 입소한다고 한다.

이날 오전 9시 충남 예산군 한 길가에서 고라니가 차량에 치였다는 신고가 접수돼 직원들이 출동했지만,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뒤여서 현장에서 폐사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2일 충남 예산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수의사와 재활관리사가 구조된 야생동물의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야생동물이 설 자리는 해마다 좁아지고 있다. 방음벽, 수로, 도로 등 인간이 만든 구조물로 부상을 입거나 조난됐다가 구조된 야생동물의 수가 4년 만에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1만1253마리였던 구조 야생동물의 수는 2022년 2만161마리로 증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 고양이 등 인간과의 생활에 익숙한 반려동물이 아님에도 귀엽거나 특이하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키워지다가 버려지는 야생동물도 늘어나는 추세다. 야생동물 유기 건수는 지난 2019년 204개체에서 2022년 299개체로 늘었다. 동물원·수족관 외의 시설(야생동물 카페 등)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 연말 법이 본격 시행되면 야생동물의 유기·방치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야생동물 보호 및 복지 강화에 대한 국민의 인식 개선과 함께 정책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보호생활중인 최고참 너구리 짬이.

환경부는 현재 전국의 17개 야생동물 구조센터 중 지자체가 운영하는 10개 구조센터와 협력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 다만 구조·치료 기능에 집중된 구조센터의 특성상 장기적인 수용 및 보호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충남 서천에 총 1000개체 이상의 야생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대규모 보호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국립생태원 내 보호시설은 2023년 말, 옛 장항제련소 부지 내 보호시설은 2025년 말에야 개소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는 야생동물구조센터 중심의 임시보호체계가 가동되고 있다. 이 중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2483개체를 구조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지난 17일 별도의 ‘유기 야생동물 보호소’도 개소했다. 현재 충남구조센터에는 사람 손에 키워졌다 버려져 야생성을 잃고 12년째 체류 중인 너구리 ‘짬이’도 머무르고 있는데 사람으로 치면 100세가 넘은 장수 개체라고 한다.

지난 한 해 야생동물 구조센터를 거친 야생동물들이 2만 마리를 넘기면서, 전국 17개에 불과한 구조센터의 수를 늘리고 인력·시설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등에는 별도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없어 충남구조센터에서 1시간 거리의 세종시 구조 현장에도 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야생동물들의 번식기가 되는 여름철이면 하루 30∼40마리, 월 300∼400마리씩 구조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는 충남구조센터에 상주 중인 수의사는 3명으로, 그나마 지난해에 비해 1명이 늘어난 수준이다. 이곳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치료의 ‘골든타임’이 지나버리는 일도 허다하다”며 “구조되는 야생동물이 4년 새 2배, 10년 새 4배 가까이로 늘어났지만 센터의 상황은 설립 초기에서 비해 크게 나아지지 못해 관심과 지원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라쿤·미어캣 등 외래종, 자연방사땐 생태계 교란… 별도 보호시설 필요

재분양돼도 유기 가능성 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우려

충남 예산군에 위치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지난 17일 문을 연 ‘유기 야생동물 보호소’에는 현재 두 마리의 라쿤이 머물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홍익대 인근을 돌아다니며 작은 소동을 일으키다가 주민 신고로 포획된 야생동물이다. 밖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다니거나, 건물에 배설물을 누고 다니다가 주민 신고가 접수돼 서울에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됐다.

문제는 라쿤이 야생동물 중에서도 환경부에서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한 ‘외래종’이라는 점이었다. 외래 동물은 국내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질병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토종 야생동물처럼 자연 방사가 어렵고 개인 소유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시설 내 별도의 보호가 필요하다. 특히 동물원·수족관 외에서의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해 일명 ‘야생동물 카페 금지법’이라고도 불린 야생동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되면서, 외래동물 유기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라쿤·미어캣 카페 등이 몰린 수도권에서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만 서울 센터는 외래동물을 장기 수용할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홍대 출신’인 두 마리의 라쿤이 충남구조센터까지 오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새롭게 개소한 이곳 충남 유기 야생동물 보호소는 주로 라쿤, 미어캣, 여우, 프레리독 등 최대 30개체의 외래 야생동물 치료 및 보호에 사용된다. 지난 12일 이곳을 먼저 방문했더니 종 별로 2∼3개씩 방이 배치돼 있었다.

다만 유기된 외래 야생동물이라고 해서 모두 보호소까지 오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외래 야생동물은 구조된 후 먼저 관할구역 내 동물보호센터로 이동해 소유자 공고 등을 거치게 되는데, 원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도 보호시설로 곧바로 이송되지 않고 제3자에게 재분양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충남구조센터는 “야생동물은 서식 특성이 반려동물과 달라 호기심에 분양이 이뤄져도 다시 유기될 가능성이 커, 개인 분양을 거듭하다 보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며 “현행법상에서는 재분양을 막을 길이 없지만, 특히 외래 야생동물의 경우 재유기 시 국내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곧바로 보호소로 올 수 있도록 지침이 정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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