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학폭’ 땐 대입 5수까지 꼬리표… 일각선 “학교가 소송판 될라”[10문10답]
학폭기록 졸업 후 4년까지 유지
정시 등 모든 전형에 반영 의무화
기재 회피 목적의 자퇴도 불허
가·피해자 분리 3 → 7일 연장
교육적해법 대신 엄벌주의 치중
법적분쟁 증가 등 우려는 여전
반영 방식 등 가이드라인도 없어
미국 대다수 주 ‘중대 사태’ 땐 퇴학
중국, 교직원·학생 필수 예방교육
정부가 2012년 이후 11년 만에 학교폭력(학폭) 근절 대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자녀 학폭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태가 사회적 공분을 불러온 이유는 학폭으로 피해 학생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동안 가해 학생은 부모를 등에 업고 ‘소송’을 남발하며 명문대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민족사관고에서 학폭으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으나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서울 반포고로 전학을 간 뒤 서울대에 정시로 합격했다. 이에 이번 정부 대책은 가해 학생의 불이익을 확대하는 ‘엄벌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징계 기록의 보존 기간을 기존보다 늘리고 대입 정시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 골자다. 학폭 처분의 실효성과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입시 불이익에만 치중한 나머지 교육적 해법을 놓친 대책, 법적 분쟁 증가 우려 등에 대한 지적도 한다. 이번 학폭 대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실효성과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1. 학교폭력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학폭 발생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7년 3만1000건에서 2019년부터 4만3000건으로 크게 증가했고 2022년에는 6만2000건을 상회했다. 원격수업이 활성화됐던 코로나19 기간 동안 잠시 주춤했던 학폭 피해 응답률은 대면 수업이 전면 회복된 지난해엔 1.7%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6%보다 높아졌다.
학폭은 저연령화되고, 유형은 신체폭력보다는 사이버·언어폭력이 급증하는 양상이다. 신체폭력은 2013년 학교폭력 유형의 대부분(66.9%)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2021년 조사에선 그 비중이 35.9%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사이버폭력은 5.4%에서 11.8%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 결정에 대한 가해학생의 행정심판·소송 제기비율은 5% 미만 수준이나 최근 3년간 행정심판·소송 제기 건수가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행정소송 건수는 2020년 111건에서 지난해 265건으로 증가했다.
2. 그간의 학폭 대응 문제점은
그동안 중대한 학폭 조치에 대한 학생부 보존 기간은 졸업 후 최대 2년이었는데 ‘졸업 직전 심의 후 삭제’ 조치 등으로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가·피해 학생 즉시분리(3일 이내) 제도 및 학교장 긴급조치를 통해 피해 학생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있으나 사안 발생 시 학교 전담기구의 사안조사(3주)·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 심의(4주) 등의 소요기간에 비해 분리 기간이 짧아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 공백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행정심판·소송·집행정지 등 가해 학생 불복으로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집행이 지연된 경우에도 피해 학생은 2차 피해에 노출된다는 문제점이 컸다.
3.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 보존 얼마나 늘어나나
앞으로 중대한 학폭을 저지른 가해 학생에게 내려지는 6호(출석정지)·7호(학급교체)·8호(전학) 조치의 학생부 보존 기간은 졸업 후 최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다. 교육부는 보존 기간을 4년으로 한 것에 대해 “대입은 4년이 지나면 (수능 응시생이) 급격히 줄어드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학생부에 기재된 학폭위 조치를 삭제하기 위한 심의에서 피해 학생의 동의 여부와 가해 학생이 제기한 불복 소송 여부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가해 학생이 반성하지 않고 학생부 조치사항 기재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학폭위 조치 결정 전에는 자퇴할 수 없게 했다. 자퇴생들의 학폭 조치사항 여부도 대입에 반영할 방침이다.
4. 모든 대입전형에 학폭 가해 이력 반영하기로 했는데, 구체적 내용은
‘2026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에는 대입 수능, 논술, 실기·실적 위주 전형에서도 학폭위 조치를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는 정시 등 모든 대입 전형에 학폭위 조치 사항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등 학생부 위주 전형에만 학폭위 조치 사항이 평가에 고려된다.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각 대학이 따라야 하는 대입전형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마련한다. 입학일 기준으로 2년 6개월 전에 공표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26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의 구체적인 내용은 올해 8월 공개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중대한 학폭 가해 학생의 경우 당락을 좌우할 수준으로 학폭위 조치가 대입에 반영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반영 방식과 기준은 대학별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효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5. 피해 학생 보호는 어떻게 개선되나
학폭이 발생할 경우 학교장이 가·피해 학생을 즉시 분리해야 하는 기간은 3일에서 7일 이내로 연장된다. 분리 이후 학교장이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할 수 있는 ‘가해 학생 대상 긴급조치’에 학급 교체도 추가하고, 가해 학생의 출석정지 처분 역시 학폭위 심의 결정까지 가능하도록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 예방법)’도 개정할 방침이다.
피해 학생이 요청할 경우 학교장이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출석정지나 학급교체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피해 학생에게 분리 요청권도 부여한다. 가해 학생이 학폭위 결정에 불복해 집행정지를 신청하거나 소송 등을 제기할 경우 피해 학생에게 이를 통보하고, 가해 학생이 제기한 불복 절차에서 피해 학생이 진술권을 얻을 수 있도록 국선대리인 선임 등도 지원한다. 정부는 피해 학생 전문 지원기관도 올해 303곳에서 내년 400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6. 교원 ‘학폭 지도 면책권 부여’는 무엇인가
정부는 최근 학폭이 교권 하락과 함께 심화됐다는 판단하에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에 대응토록 민·형사상 책임 면제와 책임계약 등을 지원할 방침이며,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수업 경감도 검토하고 있다. 일단 교사들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방해하면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고의가 아니거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할 계획이다. 교사들이 학폭 사건 해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 책임을 완화하겠다는 의도다. 또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폭력 사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17개 시도교육청에 ‘학교폭력예방·지원센터(가칭)’를 설치·운영할 예정이다. 교원치유지원센터를 도입해 교사들에게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한편 배상책임보험을 보장해 교권을 보호할 계획이다.
7. 학폭 예방교육 프로그램 내실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교육부는 최근 학폭 예방 프로그램과 관련 학생들의 사회·정서 교육을 지원하고 체육·예술 교육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폭력 성향에 빠지지 않게 공동체 교육과 정서 교육을 병행한다는 것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학교와 늘봄학교 중에서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 심리 안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2025년까지 전국으로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학교스포츠클럽 운영을 대폭 확대해 학생들의 공동체 역량과 감성을 높일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기준 12만8000여 개의 학교스포츠클럽을 올해 23만5000여 개로 2배 가까이 늘리고, 예산 또한 129억 원에서 528억 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8. 학폭 대응 정책에 대한 우려점은
교육계에선 학폭 대책이 대입 불이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최근 증가하는 초·중생 학폭에 대해서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는 교사의 교육적 해결 능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고, 민·형사상 책임 면제와 배상책임보험 보장의 기준과 규모가 빠져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소송으로 인해 교육적 기능 상실 우려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원들의 학폭 지도·처리에 불만을 제기하며 사소한 흠결을 문제 삼아 악성 민원과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현장의 고충을 제대로 보호·해소해주지 않는다면 교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학교는 치유와 화해 등 교육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9. 학폭 대처 외국은 어떻게 대처하나
세계 주요국은 학교폭력과 관련해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과 교육환경이 유사한 일본은 2013년 9월 이지메 문제가 심각해지자 ‘괴롭힘 방지 대책 추진법’을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학교 내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은 경찰과의 연계를 통해 범죄 사건으로 다룬다. ‘괴롭힘 방지 대책 추진법’에 의해 해당 학교 폭력이 ‘중대 사태’로 인정될 경우 학교 교육위원회가 사실관계 조사를 담당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대부분 주에서 ‘학교폭력 방지법’을 법제화해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최소 퇴학 처벌을 하며 학교와 그 주의 기관이 법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중국은 2021년 6월부터 시행 중인 ‘중화인민공화국 미성년자 보호법’에 따라 학교가 학생 괴롭힘 방지보호제도 설치 및 교직원·학생에 대한 학교폭력 방지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10. 학폭 관련 입법 상황은
여야가 ‘제2의 정순신 아들’을 막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21대 국회에서 지난 3년간 처리한 학교폭력 관련 법안은 단 2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47개에 달한다. 이를 두고 여야가 학교폭력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1대 국회가 처리한 2건의 개정안은 2020년 강훈식·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을 통합 조정해 처리됐다. 학교폭력 사안의 심의 과정에서 아동심리 관련 전문가, 특수교육 전문가 등을 출석하게 하거나 서면 등의 방법으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의 장이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한 경우 바로 가해자와 피해 학생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가장 최근에는 한준호 민주당 의원이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늑장 전학’ 사례를 막기 위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전학 또는 퇴학 처분이 지연되지 않도록 다른 봉사 조치가 함께 부과되는 것을 제한하고, 가해 학생 등이 제기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결과가 피해 학생 및 소속 학교의 장에게 통보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박정경·김선영·이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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