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아브제예바 “음악은 국경도 성별도 없는 언어”
오는 5월 12일 ‘올 쇼팽’ 프로그램 리사이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화려하고, 여성성이 강조된 드레스 대신 심플한 수트를 입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여전히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9)는 옷차림부터 ‘파격의 길’을 걸었다.
“분위기에 맞는 복장을 갖추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게 꼭 드레스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는 없애는 게 음악 본연에 더 충실하게끔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아노 앞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킨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온다. 다음 달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여는 아브제예바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먼저 만났다.
오랜 전통을 깨부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15년쯤 전이었다. 그는 “당시 한 공연장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연주했는데, 공연 2부쯤 이 드레스가 그날의 작품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연한 관례로 받아들였던 여성 연주자의 드레스 복장을 벗고 ,그는 스스로의 ‘새로운 원칙’을 만들었다. 오로지 음악과 음악가로 서기 위한 철칙이었다. 음악 앞에선 “국경도, 성별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 앞에서의 전 여자도 남자도 아니에요. 전 관객의 입장에서도, 연주자의 입장에서도 무대 위 음악가가 어느 나라 출신이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음악적인 언어니까요. 음악은 국경이 없는 언어이고, 이것은 모든 예술을 통틀어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브제예바는 한국인 최초의 우승자인 조성진 이전인 2010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주인공이다. 세계적인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서 여성 우승자가 나온 것은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이었다.
당시 콩쿠르는 꽤 화제였다. 결선 무대에선 갑자기 조명이 꺼지는 사고가 생겼다. 관객은 술렁거렸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연주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그는 빛나는 연주로 우승에 올랐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잉골프 분더(공동 2위)와 다닐 트리포노프(3위)도 제쳤다. 콩쿠르 우승 당시엔 “쇼팽의 음악과 일치하는 연주”라는 평을 받았다.
아브제예바는 “아르헤리치와 같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하고 항상 감격스럽다”고 했다. 특히 “쇼팽 콩쿠르에 참가했을 당시 그녀가 심사위원이었기에 더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우승 후 그녀와 함께 대화하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기회들이 주어져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솔로 리사이틀에선 13년 만에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난다. 한국에서의 솔로 리사이틀은 2014년,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다. 1부에서는 폴로네즈 2곡, 뱃노래, 전주곡, 스케르초 등을, 2부에서는 마주르카와 소나타 제3번 등을 구성했다. 아브제예바는 “마주르카 속 쇼팽의 표현은 매우 순수하고 완전하다”며 “마주르카는 쇼팽 음악의 본질”이라고 했다.
“올 쇼팽 프로그램 리사이틀을 결정하기까지 스스로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모든 시대의 음악은 서로 연결돼 있어 다른 시대의 음악을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이 따라와야 했죠. 최근에 제가 연주한 일본 작곡가 다케미츠 토루의 작품은 쇼팽의 음악적 컬러와 사운드에 영감을 줬어요.”
쇼팽 콩쿠르 이후 다시 연주하는 ‘올 쇼팽’에선 아브제예바가 지금 현재 생각하는 쇼팽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내가 가진 쇼팽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쇼팽이 남긴 악보에 있다”며 “이번 공연으로 쇼팽 음악의 비전을 제시하고, 제가 요즘 느끼는 쇼팽의 음악은 어떠한지 한국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솔로 리사이틀은 8년 만이지만, 지난해 1월 피에타리 잉키넨의 KBS교향악단 취임식을 위해 내한,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아브제예바는 “당시 연주회를 계기로 한국 관객들과 음악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며 “팬데믹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국 음악가와도 친분을 쌓으며 인연을 맺고 있다. 아브제예바 다음 회인 제 17회 쇼팽 콩쿠르(2015)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여러 차례 만나며 음악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아티스트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음악가들 중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연주자로는 여러 차례 만나기도 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있어요. 김봄소리는 제가 아주 좋아하고 또 친분이 있는데,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연주자예요.”
음악가 아브제예바는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피아노는 내겐 완벽한 파트너”라며 “여전히 레퍼토리 욕심이 많고, 아직도 배우고 싶은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
“항상 새로운 작품들을 배우고 싶은 욕심은, 아마도 모든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인 것 같아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작품에서조차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니까요. 그래서 평생 이 도전을 계속 즐기고 싶어요. 음악은 늘 놀랍고 즐거운 발견으로 가득 차있어요. 제게 음악은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모험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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