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진시황 위협한 흉노제국, 여성이 영토확장 주도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4.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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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충원 교수, 유골 유전자로 확인
다민족 제국의 확장, 주역은 여성 귀족
몽골 초원 타힐링 훗거르의 흉노제국 여성 귀족 무덤에서 발굴된 해와 달 상징물. 여성이 강력한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J. Bayarsaikhan,

중국의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까지 쌓아 막으려 했던 흉노(匈奴, Xiongnu)제국이 한국과 독일, 미국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2000년 만에 실체가 드러났다. 초원의 유목민 제국은 다양한 민족들이 용광로처럼 섞였으며, 귀족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크리스티나 워린너(Christina Warinner)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수(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1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흉노제국의 서쪽 변방에 있었던 무덤들에서 발굴한 유골 18구의 유전자를 분석해 귀족 계급은 하층 계급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덜 했으며, 유라시아 동부 계통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족 안에서도 유전자 달랐던 다민족 사회

흉노는 기원전 209년 묵돌 선우가 오늘날 몽골 초원에서 여러 부족을 통합해 세운 제국이다. 서기 100년 무렵 중국 한나라에 멸망되기까지 300년 동안 유라시아 동부의 초원지대를 지배했다. 흉노제국은 철기시대 이집트에서 로마,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과 교역을 하고 영향력을 미쳤다고 알려졌지만, 자체 문자가 없어 적대국의 기록에만 남아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정충원 교수는 앞서 연구에서 훙노제국이 다민족 사회였음을 알아냈다. 지난 2020년 막스플랑크 연구진과 함께 국제 학술지 ‘셀’에 흉노제국이 유라시아 동부에서 서로 다른 3개 유전자 집단이 융합하면서 형성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몽골 일대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214구에서 채취한 DNA를 해독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 몽골 남동쪽과 북서쪽, 서쪽에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지닌 인류 집단이 지리적으로 격리된 채 이어지다가, 지금으로부터 2900∼2300년 전인 철기시대 끝 무렵 갑자기 섞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흉노제국이 형성된 시기와 일치한다.

흉노제국 지배계급의 일상을 보여주는 상상화. 흉노족은 2200년 전 몽골 초원에 다민족 제국을 건설했다./Dairycultures Project

정 교수는 이번에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와 지구인류학연구소, 미국 하버드대, 미시건대 연구진과 함께 2007년 알타이산맥 아래 몽골 초원지대의 타힐링 훗거르(Takhiltyn Khotgor)에서 발굴된 귀족 무덤과 솜부우진 벨치르(Shombuuzyn Belchir)의 지역 지배층의 무덤을 연구했다. 이곳은 흉노제국 당시 서쪽 국경지대에 해당된다.

유골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개인마다 흉노제국 전체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높게 나왔다. 정충원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유전자는 몽골 초원과 주변지역을 아우르고 있다”며 “한 곳에서 유라시아인 유전자의 3분의 2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역은 물론 가족 안에서도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 흉노제국이 다민족 사회였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논문 제1 저자인 이주현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흉노족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았다고 알고 있지만, 이런 다양성이 지역적으로 동질적인 공동체들이 결합한 결과인지 아니면 지역 사회 자체가 유전적으로 다양했는지 불분명했다”고 밝혔다. 흉노제국은 지역 사회 구석까지 다양한 민족이 섞였다는 것이다.

◇여성이 강력한 권력 가졌던 것으로 추정

유전적 다양성은 계급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귀족 무덤 주변에는 다른 무덤들이 위성처럼 배치돼 있었다. 하인의 무덤이다.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하층 계급이 흉노제국에서 가장 먼 곳이나 외부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돌로 둘러싸였거나 나무관이 나온 귀족 무덤의 유골들은 전반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낮았다. 이들은 주로 유라시아 동부 계통으로 확인돼, 흉노제국의 권력이 특정 유전자 집단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벨치르 무덤 유골을 통해 귀족 계급 역시 혼인을 통해 새로운 집단과의 유대를 공고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충원 서울대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흉노족이 이질적인 집단을 통합하고 결혼과 친족 관계를 제국 건설에 활용함으로써 제국을 확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몽골 초원의 타힐링 훗거르에서 귀족 계급의 무덤을 발굴하는 모습./Michel Neyroud

특히 이번 연구는 당시 여성 귀족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고대 기록을 뒷받침했다. 연구진은 타힐링 훗거르에서 나온 귀족 여성의 무덤은 가장 깊어 공들여 조성됐음을 알 수 있었다. 무덤의 주인은 흉노제국의 황금빛 해와 달 문양이 새겨진 정교한 관에 묻혔다.

연구진은 흉노제국의 지배자가 공주들을 지방 지배계급과 결혼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정충원 서울대 교수는 “흉노족이 이질적인 집단을 통합하고 결혼과 친족 관계를 제국 건설에 활용함으로써 제국을 확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흉노제국의 서쪽 변방 무덤의 주인 중 앞서 정 교수가 2020년 밝힌 흉노족 황실 유전자와 연계된 사람은 여성뿐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이 단순히 정략결혼의 도구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타일링 훗거르의 여성 무덤에는 말 6마리와 전차가 묻힌 것으로 밝혀져 생전 권력이 강력했음을 입증했다.

솜부우진 벨치르의 지방 지배계급의 묘지에서도 여성들이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무덤을 차지했다. 나무관에 유리와 금 구슬, 중국산 거울, 청동 가마솥, 비단옷, 나무 수레, 가축 등이 같이 발굴됐다. 특히 기마 전사의 상징으로 여겼던 중국산 칠기 잔과 금도금 허리띠, 마구까지 나왔다. 이 유물들이 나온 무덤의 주인은 당초 남성으로 여겼지만, 이번 분석에서 여성으로 확인됐다.

공동 제1 저자인 브라이언 밀러(Bryan Miller) 미시건대 교수는 “여성들은 국경지대에서 흉노제국의 대리인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며 “이들은 흉노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대초원지대의 권력 집단과 실크로드 교역망을 이루는 데 참여했다”고 밝혔다.

흉노제국의 어린이 무덤에서 나온 활, 화살./Bryan K. Miller

◇초원제국의 문화적 유산 몽골로 이어져

유전자 분석은 흉노제국에서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도 밝혔다. 예를 들어 11~12세 소년들은 성인 남성과 같이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매장됐지만, 그보다 어린 나이면 그런 부장품이 없었다.

하버드대의 워린너 교수는 “흉노 사회에서는 나이와 성별에 따라 매장에서 다른 대우를 받았다”며 “사냥꾼이자 전사라는 사회적 역할이 아동기 후반이나 청소년기 초반까지 남아에게 부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흉노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사회적, 문화적 유산이 계속 초원지대에 이어졌다고 밝혔다. 논문 공저자인 몽골국립박물관의 잠스란야프 바야르사이칸(Jamsranjav Bayarsaikhan) 박사는 “이번 결과는 흉노제국, 특히 변방에서 귀족 여성이 정치와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목민의 전통을 확인했다”며 “이 전통은 흉노족에서 시작돼 천 년이 지나 몽골제국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Advances(2023),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f3904

Cell(2020).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0.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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