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정처 없이 떠돈 하루

이성균 기자 2023. 4. 1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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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 지역은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다. 하늘만 바라보고 싶은데 자꾸 회색빛 건물이 시야에 걸린다. 답답한 빌딩숲을 벗어나 고즈넉한 서울을 보러 성북동으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어도 괜찮다. 정처 없이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니까.

●조화를 이룬 두 가지 분위기

성북동 여행은 크게 두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6번 출구로 나와 걷기 시작하면 된다. 성북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성북동 누들거리, 최순우옛집, 선잠단지, 성북동쉼터(성곽길), 성북구립미술관, 만해한용운심우장, 복정마을 순으로 걷다가 마지막으로 길상사를 찾으면 된다.

중간에 식사하고, 차 한잔 마시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5~6시간이면 성북동의 매력을 알아가는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혹은 한양도성이 시작되는 와룡공원에서 시작해도 된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 성북동으로 들어올 수 있고, 먼저 선잠단지가 여행자를 반길 것이다.

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물론 왕조의 권위도 드러낸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약 18.6km)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됐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성북동을 걷기 시작한다. 보통의 주택과 으리으리한 저택, 한옥이 혼재한 동네다. 또 유독 사찰과 성당 등의 종교 시설을 쉽게 볼 수 있다. 성북동 안에서 다채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성당 덕분에 유럽의 조그마한 동네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난다.

또 봉은사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고즈넉한 사찰로 꼽히는 길상사도 이곳에 있다.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도심 속 안식처 같은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해질녘도 놓치면 안 된다. 성북동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옛날 스타일의 주택이 많기다. 이 덕분에 햇빛이 누그러지는 시간이 될수록 동네가 더욱 예쁘게 보인다. 빨간색 위로 주황색이 내려앉은 성북동은 옛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저 동네를 유유히 거니는 것마저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

●분명 처음인데, 희한하네

성북동에서 처음 만난 가게들이 많은데, 의외로 낯설지가 않다. 익숙하면서도 편한 분위기 덕에 동네에 좀 더 친밀감을 느꼈다. 식당과 카페, 빵집도 마찬가지. 먼저 성북동을 걷다 보면 양념 돼지고기의 맛있는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냄새의 범인은 쌍다리돼지불백과 성북동돼지갈비다. 꽤 유명한 가게들인데, 본점은 모두 성북동에 있다.

성북동을 걷다 보면 맛있는 냄새가 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돼지불백

메뉴로 부대찌개, 낙지볶음도 있지만 처음 왔다면 무조건 돼지불백이다. 달콤 짭짤한 양념이 된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한 백반이다. 한 끼 뚝딱 먹기 좋은 구성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돼지고기 전문점이 얼마나 많은가. 독보적인 맛을 기대하고 오면 분명 실망할 터. 성북동에 소풍 왔다가 동네를 오랫동안 지키는 식당에 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더 즐거운 식사가 될 것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핸드드립 커피

입가심은 커피만 한 게 없다. 서울 아니 한국 어디나 그렇겠지만 성북동에도 카페가 꽤 많다. 이번에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내실 있는 곳을 선택했다. 핸드드립 전문점 일상으로 향했다. 소박하지만 커피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내려 준다. 고소하면서도 새콤한 커피로 식곤증을 날렸다.

성북동에서 유명한 카페 '일상'의 커피

성북동을 떠날 땐 빵을 사 들고 가는 건 어떨까. 1968년을 문을 열어 성북동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나폴레옹과자점 본점이 있으니까. 서울미래유산, 백년가게(중소벤처기업부 인증), 성북동가게(성북구 인증)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본질은 맛있고 좋은 빵을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북동을 지키는 나폴레옹과자점 본점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선사하는데, 맛까지 좋으니 사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곳에서는 맛봐야 할 제품으로는 구로칸토 슈니텡, 찹쌀꽈배기, 크림빵, 토종밤식빵, 마로니에, 옥수수쉬폰, 유럽왕실디저트, 사라다빵, 통호밀호두식빵 등이 꼽힌다. 워낙 종류가 많아 한 번의 방문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커피와 잘 어울리는 나폴레옹과자점의 유럽왕실디저트

사실 마지막보다는 성북동 도착하자마자 나폴레옹과자점에 들르길 추천한다.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었는데, 이미 인기 있는 빵 대다수는 매대에서 사라졌기 때문. 성북동 도보 여행 시작점을 빵집으로 해도 괜찮겠다. 짐은 늘겠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할 테니 말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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