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vs 김기현, 그들이 서로에게 폭발한 3가지 이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내홍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초 김재원 최고위원의 단순 일탈로 보이던 사태가 김기현 대표의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한 상임고문 해촉으로 오히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모양새다. 당 안팎에선 이번 사태에서 김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간 갈등이 격화된 배경을 △홍준표 시장과 김재원 최고위원의 구원(舊怨) △'대권 주자' 홍준표 시장의 차별화 전략 △김기현 대표의 당 장악력 확보 욕구 등 3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해당 발언들로 논란을 빚은 뒤에도 지난달 2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한인 보수단체 강연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했다"고 말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자 홍 시장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맨날 실언만 하는 사람은 그냥 제명하라"며 "한두 번 하는 실언도 아니고 실언이 일상화된 사람인데 그냥 제명하자"고 김 최고위원을 직격했다.
이처럼 홍 시장이 '전광훈 논란'에 적극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배경에는 보수의 성지인 대구광역시를 둘러싼 김 최고위원과 홍 시장 간의 오래된 '악연'이 있다는 해석이다.
홍 시장과 김 최고위원은 둘 다 대구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당시 '이준석 지도부'의 최고위원이던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지만, 홍 시장이 레이스에 참전하며 결국 패배의 쓴맛을 봤다. 당시 홍 시장은 출마하며 '이준석 지도부'가 의결한 '현직 의원 출마 시 25% 페널티' 조항을 문제 삼았고, 이를 10% 페널티로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페널티 조항은 김 최고위원이 자신의 대구시장 출마를 고려해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조항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부에서는 '전광훈 논란' 초기부터 김 최고위원의 발언들을 두고 "대구 출마를 염두에 둔, 강성 지지자들을 향한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알아챈 '정치 9단' 홍 시장이 김 최고위원 견제를 위해 해당 사안에 대한 메시지를 적극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러자 홍 시장이 김 대표를 향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 최고위원을 징계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홍 시장은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셀프 자숙이 징계냐"며 "(김 대표는) 말 몇 마디로 흐지부지하지 마시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시라. 그래야 당대표로서 영이 살아난다"고 썼다.
김 대표와 홍 시장의 갈등은 '말싸움'으로 번지며 서로의 감정을 자극했다. 김 대표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 시장을 향해 "지방자치 행정에 전념해달라"고 경고장을 날렸고, 홍 시장은 "(지도부가 전 목사의) 눈치나 보고 있다"며 맞받았다. 홍 시장은 "당 지도부가 소신과 철학 없이 무기력하게 줏대 없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또다시 총선을 앞두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냐"며 출범 한 달도 안 된 지도부를 향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홍 시장이 의도적으로 여당 지도부와의 차별화를 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지난 13일 홍 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는 초강수를 뒀다. 최고위 비공개 회의 때 갑자기 결정 난 것으로, 해당 사안은 최고위원들 간 미리 공유하는 회의 안건에도 올라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에 갑작스레 김 대표가 직접 홍 시장에 대한 해촉 안건을 들고 들어왔다는 얘기다.
김 대표가 해촉 결정을 내린 이후 당 내부에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 대표의 갑작스러운 대응에 당 일각에선 '용산의 뜻이 전달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친윤(친윤석열)계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 대표의 이번 결정은 용산과 상의 된 일이 전혀 아니다"라며 "의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 대표와 가까운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홍 시장이 새로운 지도부를 흔들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선 넘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4선 의원인 김 대표가 몰랐겠나"라며 "이를 제지하기 위해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면서 빠르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정치적으로 이번 결정을 통해 김 대표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오히려 '전광훈 논란'이 커졌고, 홍 시장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언론들은 더 많아졌다. 김 대표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도 "홍 시장에 대한 처분을 내리려고 했다면 적어도 명분 쌓기용으로라도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먼저하고 했어야 한다"며 "김 대표의 입장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순서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당초 김 대표는 김 최고위원을 징계하게 되면 논란이 더 길어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징계를 하며 논란을 키우기보다 빠르게 안정된 지도부의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넘기려 했다는 해석이다.
결국 홍 시장이 이슈의 중심에 서며 '전광훈 논란'은 새로운 양상으로 흐르게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우선 맞대응을 자제하면서도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라며 "윤리위원회 구성만 마치면 최대한 빠르게 징계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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