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욕망,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32)

2023. 4. 1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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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여성 납치 사건 때문에 밤길이 더 무서워졌다. 납치 원인은 돈이라고 한다. 돈은 있어도, 없어도 문제다. 많으면 많을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너무 적거나 아예 없으면 인생 자체가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못된 남자들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돈 많은 여자나 아이들 납치를 생각한다. 여성이나 어린이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여겨서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1618년경, 캔버스에 유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그리스신화에서 여성의 납치를 보여주는 장면이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사건이다.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가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두 개의 알을 낳았다. 한쪽 알에서는 카스토르(남자)와 클리템네스트라(여자)가 태어나고, 조금 뒤 다른 알에서는 폴리데우케스(남자)와 헬레네(여자)가 태어났다. 먼저 태어난 아이들은 인간이었지만,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 제우스의 피를 물려받아 불사의 몸을 가졌다.

형제애가 아주 돈독했던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그리스 아르고스의 왕 레우키포스의 아름다운 딸 힐라에이라(기쁨)와 포이베(화려함)를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은 린케우스와 이다스 쌍둥이와 약혼을 했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두 자매의 결혼식에 참석해 이들을 납치해 도망가려다 약혼자들과 싸움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카스토르가 그만 죽고 말았다.

폴리데우케스는 형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죽음을 선택하지만, 불사의 몸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결국 폴리데우케스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죽음을 부탁했다. 이들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주었다. 그 별이 쌍둥이자리다.

레우키포스 딸들을 납치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다. 카스토르가 검은 말 위에 앉아 있다. 동생 폴리데우케스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도 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백마에서 내려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잡고 있다. 카스토르가 말에 앉아 있는 것은 그가 말타기에 능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무장하지 않은 폴리데우케스는 불사의 몸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화면 아래쪽에 있는 여인이 포이베다. 금빛으로 빛나는 옷이 벗겨진 채 저항하고 있다. 황금빛 옷은 결혼식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결혼식 예복이 황금색이었다. 폴리데우케스의 팔에는 힐라에이라가 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팔을 뻗어 하늘을 보고 있다. 벗겨진 그의 붉은 옷은 카스토르의 어깨에 걸쳐 있다. 힐라에이라를 원하는 사람이 카스토르임을 암시한다.

루벤스의 이 작품에서 사건의 긴장감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건 말이다. 부릅뜬 눈으로 발을 들고 우뚝 서 있는 말은 이 장면에서 동물적인 힘을 상징한다. 여성의 납치는 17세기 최고 인기가 많았던 그림 주제였다. 루벤스는 여성의 누드를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힘이 없다고 여성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 어머니이자 동생, 누나일 수도 있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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