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괴물? 원조 괴물이 잡았다 "후배 도전 무섭냐고요? 더 많이 나와야죠"
지난해부터 모래판을 강타했던 '씨름 괴물'의 독주가 일단 멈췄다. 4년 전 먼저 씨름판을 평정했던 원조 괴물에 의해서다.
장성우(26·MG새마을금고)가 무서운 신인 김민재(21·영암군민속씨름단)의 5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다. 장성우는 반년 만에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며 씨름 최강자의 부활을 알렸다.
'위더스제약 2023 민속씨름 평창오대산천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140kg 이하) 경기가 열린 13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생활체육관. 이날 최대 관심사는 김민재의 우승 여부였다. 울산대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부터 민속 씨름 대회 4연속 정상을 차지하며 거침 없는 기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민재는 지난해 단오 대회에서 첫 꽃가마에 오른 뒤 12월 천하장사 대회마저 제패했다. '씨름 황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 이후 무려 37년 만에 대학생 천하장사에 등극하며 모래판 괴물로 불렸다. 대학을 중퇴하고 실업팀에 입단한 올해 김민재는 설날 대회와 문경 대회까지 석권하며 무패 행진을 달렸다.
하지만 김민재의 연속 우승 도전은 장성우에 막혔다. 장성우는 이날 4강전에서 김민재를 2 대 1로 눌렀다. 장성우는 첫 판 밀어치기로 기선을 제압했고, 김민재가 장기인 들배지기로 둘째 판을 만회했다. 그러나 마지막 셋째 판에서 장성우가 안다리 공격을 들어오는 김민재를 노련하게 밀어치기로 눕히며 결승에 올랐다. 지난해 단오 대회 4강전 패배를 되갚았다.
여세를 몰아 장성우는 백두장사 결정전에서 이재광(영월군청)을 꺾었다. 5판 3승제 결승에서 3 대 0 완승을 거두며 포효했다.
지난해 10월 안산 대회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정상을 탈환했다. 장성우는 통산 9번째 백두장사이자 천하장사(2019년, 2020년)를 포함해 개인 통산 11번째 장사에 올랐다.
사실 장성우는 모래판의 '원조 괴물'이었다. 장성우 역시 용인대를 중퇴하고 영암군민속씨름단에 입단하자마자 민속 씨름을 접수했다. 2019년 장성우는 영월 대회, 용인 대회에 이어 그해 천하장사 대회까지 거머쥐며 석권하며 최강의 씨름꾼에 올랐다. 이듬해도 장성우는 설날 대회와 평창 대회, 천하장사 대회까지 2년 연속 3관왕과 함께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장성우는 2021년부터 후배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김민재와 동갑인 최성민(태안군청)이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실업 무대에 뛰어들어 인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최성민은 고교 3학년이던 2020년 천하장사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당시 결승에서 장성우에 밀렸던 최성민은 2022년 설날 대회 결승에서는 장성우를 누르고 황소 트로피를 거머쥐는 등 그해 3관왕에 올랐다.
2022년에는 대학생 신분이던 김민재도 등장해 기존 민속 씨름 선배들을 위협했다. 장성우도 2021년과 2022년 2개 대회에서 장사에 올랐지만 후배들의 강력한 도전에 살짝 밀리는 형국이었다.
더욱이 장성우는 올해 설날과 문경 대회 모두 4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7년 만의 기업 씨름단인 신생팀 MG새마을금고의 최고 대우를 받고 이적했던 터라 기대가 컸지만 부응하지 못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장성우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굳어서 상대보다 반 박자 빠르게, 또 상대 움직임을 이용하는 스텝을 밟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장성우는 올해 3번째 대회에서는 달랐다. 무서운 후배 김민재를 누르며 건재를 확인했고, 장사 가운까지 입으며 여전한 최고의 기량을 입증했다.
장성우는 "한번 장사가 되고난 뒤 사실 계속 정상에 있을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잘 하는 동생들이 치고 올라오니까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 2~3년 동안의 상황을 돌이켰다. 이어 "후배들이 나를 이기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운동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 독해졌다"면서 "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적 자세부터 하나씩 생각했더니 몸이 유연해졌다"고 부활의 비결을 귀띔했다.
김민재와 최성민 등 무서운 후배들의 도전이 부담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장성우는 거센 도전을 오히려 반겼다. 장성우는 "엄청 잘 하는 선수들이고 들배지기 등 힘을 이용한 기술들이 좋다. 동생이지만 나이를 떠나서 강력한 경쟁자라 생각하고 경기할 때 제일 긴장하고 들어간다"고 칭찬하면서도 "그런 선수들 많이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씨름판 전체가 인기를 얻어 전성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성우는 "내가 우승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와야 (예전 이만기, 강호동 시절처럼) 씨름이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면서 "요즘 씨름 예능 프로그램도 나오는데 더 활성화해서 더 많은 팬 분들이 경기장을 찾고 중계도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의 욕심보다 한국 씨름 전체를 생각하는 최고 선수다운 발언이다.
후배들의 도전에도 정상을 지킬 자신감이 있다. 장성우는 "그래도 내가 이뤄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신예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후배들을 좋은 선수라고 칭찬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양보를 하면 안 되고 선수 대 선수로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루 4번 10시간씩 땀을 흘리기에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다.
올해 첫 우승을 이룬 장성우는 일단 단오 대회를 정조준한다. 장성우는 "단오 대회만 우승이 없는데 여기서 장사에 오르면 씨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고 설명했다. 설날과 단오, 추석 등 민속 스포츠 씨름에는 특별한 명절 대회와 가장 큰 천하장사 대회까지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겠다는 포부다.
나아가 역대 최다 백두장사 등극이 궁극적인 목표다. 장성우는 "열심히 이태현 교수님의 최다 장사 기록을 깨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태현 용인대 교수는 현역 시절 백두장사 20회, 천하장사 3회로 모래판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22살에 민속 씨름에 데뷔하면서 곧장 모래판을 평정했던 장성우. 역시 20대 초반에 씨름판을 접수하고 있는 김민재, 최성민 등 후배들의 거센 도전을 극복하고 역대 최고 씨름꾼으로 등극할지 지켜볼 일이다.
평창=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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