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선 반환’ 빠진 대책, 절망보다 얕고 죽음보다 늦었다
낙찰 땐 당장 집 비워야…선순위 근저당 탓 변제 못 받아
이미 수천만원씩 ‘빚더미’…버팀목대출도 큰 도움 안 돼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가 대대적인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았지만 불과 두 달 새 인천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졌다. 정부의 피해자 대책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범정부 차원의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지원은 가구당 최대 2억원(보증금 3억원 한도) 대환대출 신설, 수도권 500가구 이상 긴급주거지원 확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빌라를 낙찰받을 시 무주택자 요건 유지 등이었다.
여기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원했던 ‘피해 보증금 선 반환 후 구상권 청구’는 담겨 있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의 공통점은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채를 보유한 건축왕 A씨(61)의 빌라 임차인이라는 점이다. A씨는 현재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피해자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당장 살고 있는 집이 넘어가지 않도록 정부에 ‘경매 절차 일시 중단’을 요구했지만 정부로부터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17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주택을 직접 낙찰받지 못하면 경매가 끝나자마자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경매 매각 절차가 마무리된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100가구 이상이며, 다음달에는 260여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대부분 전입신고 전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상태에서 전세계약을 맺었다.
A씨와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에게서 “선순위 근저당과 보증금을 더해도 매매가보다 낮아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즉 임차인들 앞에 선순위 채권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배당 순위에서 앞서는 은행 근저당을 제하고 나면 빌라가 경매로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100% 회수할 가능성은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최우선변제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세입자들은 말 그대로 ‘돈 한 푼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대책에 맞춰 ‘전세사기피해확인서’를 발급받아 긴급주거지원을 받거나,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을 위한 버팀목대출을 통해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도 근본적인 대안이라 하긴 어렵다. 긴급주거지원은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년까지 가능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원하는 버팀목대출도 보증금의 20%는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미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은 임차인들에게는 사실상 “더 많은 빚을 지라”는 것에 불과한 셈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경우 진행 중인 경매 절차 중단이 가장 시급하다”며 “근본적으로는 공공이 먼저 보증금을 임차인들에게 돌려주고, 추후 경매 등의 방식을 통해 회수하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류인하·심윤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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