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브라질 등 “달러 말고 위안도 받아요”… 뒤통수 맞은 미국?[이정흔의 쉬운 경제]

2023. 4.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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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달러’ 중심축이었던 사우디의 배신
중남미, 신흥국도 ‘지나친 달러 패권’ 경계

[이정흔의 쉬운 경제]


중국과 브라질이 3월 29일 향후 양국의 수출입이나 금융 거래를 할 때 달러 대신 중국의 위안화나 브라질 헤알화를 쓰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어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은 중남미 최대의 국가입니다. 그 브라질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처음 방문하는 국가가 중국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기 하루 전인 3월 28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와 함께 이 두 국가는 원유 위안화 결제 체결 소식을 알리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브라질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손잡으면서 ‘달러 패권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달러는 오랫동안 기축 통화의 지위를 누려 왔습니다. 기축 통화는 ‘국제 간의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화폐’를 말합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화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화폐인 ‘달러’가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데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산유국들과 원유·천연가스 등을 거래할 때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고하게만 보이던 이 ‘페트로 달러’ 시스템이 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브라질과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들은 왜 ‘달러’ 대신 ‘위안화’를 선택하며 ‘탈달러화’에 동참하고 나선 것일까요.

 

 달러는 어떻게 기축 통화가 됐을까

달러가 기축 통화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이후입니다. 이전만 하더라도 국가들 간의 거래에서 가장 널리 쓰인 화폐는 ‘금’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금은 안정적인 지불 수단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 영국 대표인 케인스는 세계 화폐를 제안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거부됐습니다. 그 대신 달러 중심의 금본환위제가 확립됐죠.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에 묶었고 이는 다시 금에 고정됐습니다. 금 1온스(31.1g)는 35 미국 달러로 고정됐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환율을 안정시켜 국제 무역과 투자를 증진할 수 있었죠. 당시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립니다. 유럽 국가는 급격히 경제가 성장했지만 미국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등으로 국제 수지가 적자를 내면서 달러를 마구 찍어 냈기 때문이다. 달러가 흔해지자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몇몇 국가들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 두고자 했습니다. 갖고 있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에 직면합니다. 미국은 달러 발행량에 비해 금 보유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국가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죠. 달러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자 독일과 스위스 등의 국가들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금 1온스=35달러’ 비율을 유지하기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하고 1971년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사실상 브레튼우즈 체제가 종말을 맞이한 겁니다. 지금과 같이 환율을 외환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하는 변동 환율제의 시작이죠.

브레튼우즈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 달러가 기축 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페트로 달러 시스템’입니다. 1974년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유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하기로 맺은 협정입니다.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 달러의 가격이 하락하자 달러를 보유하고 있던 전 세계 여러 국가들 역시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중 중동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 역시 손해가 컸습니다. 원유를 판매하고 막대한 달러를 갖고 있었는데 그 값어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또한 달러와 금의 가치를 더 이상 연동하지 않게 되면서 달러의 신용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국가들의 필수재인 원유를 달러로만 결재하게 된다면 달러는 더 이상 ‘금의 보증’이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이와 같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죠. 달러 가치 유지 수단이 금에서 석유로 바뀌었다고 보면 되겠지요.

 

 점점 거세지는 ‘차이나 머니’의 물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중국과 원유·천연가스(LNG) 등을 거래하는 데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한다는 소식이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25%를 가진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입니다. 한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사들이는 국가는 미국이었지만 현재는 중국입니다. 2021년 기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무역액은 873억 달러로, 그중 석유 수입이 77%를 차지하고 있죠.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출하는 석유의 25% 정도가 중국에 수출된다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80여년간 미국과 긴밀한 동맹을 맺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의 살해 배후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오랫동안 앙숙 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화해를 이끌어 내며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두 국가는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 회담을 열고 단교 7년 만에 외교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중국과 원유 거래에 ‘위안화 결제’를 선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배신이 미국에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사우디아라비아 만이 아닙니다. 3월 29일에는 중국이 최초로 LNG 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했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이 참여해 개발한 LNG 6만5000톤을 매입하는데 위안화로 거래를 완료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한 것입니다. 통상 달러로 거래되던 LNG 무역이 ‘위안화’로 거래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의 ‘도시 봉쇄 정책’에서 벗어나 경제 정상화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중국의 원유와 LNG 수입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만큼 중동 국가들과 ‘위안화’ 거래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고 이는 ‘페트로 달러’에 강력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이 ‘위안화’의 위력은 무역 금융 분야에서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4월 12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무역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무역 금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위안화 비율이 올 2월 기준 4.5%를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2% 미만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2배 이상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절대적인 수치로만 놓고 보면 달러(84.3%)에는 한참 못 미칩니다. 하지만 그 증가 폭이 매우 가파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현재 유료화 결제 비율은 6%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는 쉽게 말해 전 세계 금융 기관이 안전하게 통신하고 금융 거래 및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메시징 네트워크입니다. 1973년 설립 이후 글로벌 금융 거래의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명목으로 이 SWIFT에서 배제한 바 있는데 이는 러시아가 ‘달러’로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가장 가혹한 경제 제재였던 셈입니다.

동시에 이는 다른 국가들에 ‘달러와 글로벌 지불 시스템’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브라질과 중국이 ‘자국 통화’로 수출입 금융 거래를 하겠다는 선언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지점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브라질 업체들이 SWIFT 대신 중국이 독자적으로 만든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을 이용하기로 한 대목입니다. 중국은 2015년 CIPS를 구축했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탈달러화’를 목적으로 ‘러시아 금융 결제 정보 전달 시스템(SPFS)’을 도입한 직후입니다. 2022년 기준 CIPS 이용 금액은 96조7000억 위안, 한국 돈으로는 약 1경8400조원에 이릅니다. 전년보다 21.48% 급증한 수치라고 합니다.

현재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교역액은 1505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중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이 CIPS를 이용해 중국과 금융 거래에 나서는 상황을 미국이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달러 패권’에 대한 위안화의 위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4월 4일에는 말레이시아가 중국과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3월 31일 폐막된 보아오 포럼에서 중국에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설립을 제안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중국도 이에 환영하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가 중국에 먼저 이와 같이 제안하고 나선 것은 미국 달러화나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신흥국들은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그에 따라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 신흥국의 화폐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달러 표시 부채를 상환하는 데 비용 부담이 증가하며 경제에 부담을 주는 데다 달러 강세로 인한 자본 유출 가능성도 큽니다. 이 때문에 최근 신흥국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달러 패권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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