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속이려 가짜 홈피까지...신종 비상장주식 사기 판쳐도 담당부처 없는 금융당국
가짜 홈페이지 악용·증권정보 제공업체 정보 유출 가능성도
“서비스 환불 신청하셨는데, 당시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신 VVIP에게만 제공되는 고급 정보를 드릴게요”
최근 증권정보 제공업체의 주식 정보 제공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일부만 환불받은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비상장주식 신종 사기가 번지고 있다.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대신 고급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비상장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식이다. 투자자의 환불 처리 과정이 미흡했다는 점에 공감하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후 현혹하는 게 특징이다.
2021년 5월 이현도(가명·33)씨는 증권정보 제공업체 A사의 주식 데이터와 분석 자료 제공 서비스에 가입했다. 가입비는 500만원이 넘었지만, 상품 가입 6개월 후 합산 수익률이 180%를 넘지 않으면 환불받을 수 있다는 조건에 안심하고 가입했다.
6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 이씨의 주식 수익률은 180%는커녕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에 이씨는 환불을 요구했지만 A사는 이씨가 자신들이 제공한 종목 전부를 매수·매도하지 않았다며 109만원만 돌려줬다. 이씨가 약 400만원의 손해를 보고 상황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전화 한 통으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이씨에게 자신을 증권정보 제공업체 A사 이사라고 소개한 박진석씨의 전화를 받으면서부터다. 박씨는 이씨에게 “일부만 환불받았던 일로 연락하게 됐다”며 “대표님께서도 당시 환불 절차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죄송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불받았던 고객을 대상으로 원래는 VVIP에게만 제공되는 고급 정보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씨에게 곧 상장할 비상장 기업 B사의 주식을 사라고 했다. 그리곤 수익률 400%를 약속했다. 상장 이후 가격이 6만원 이상으로 오를 테니 지금 주당 1만5000원에 매수하라고 했다.
이씨는 두 번 속지 않기 위해 B기업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가 본 B기업 홈페이지엔 “최근 통일주권 발행 및 외부 감사를 통한 적정기준 통과를 시작으로 상장 추진을 준비 중”이라며 “벤처캐피탈 및 여러 증권사와 프리A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라는 공지가 있었다. 이후 박씨는 이씨에게 최희조(가명)씨를 B사의 IR 담당자라고 소개했다.
이후 이씨는 최씨로부터 B기업의 주식 5000주를 7500만원에 샀다. 하지만 박씨는 입금을 확인하자마자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현재 B기업 주식의 시세는 주당 8200원이다. 이 가격에 물량 전부를 처분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이씨는 3400만원을 손해 본 것이다.
이씨는 B기업 홈페이지를 다시 찾았고, 뒤늦게 B기업의 홈페이지가 2개인 것을 확인했다. 이씨가 투자 전 본 홈페이지는 ‘www.○○○○-biz.com’이 도메인이었는데, 또 다른 하나는 ‘www.○○○○.co.kr’을 주소로 쓰고 있었다. 둘 다 외형은 B기업의 홈페이지였다. 이씨가 본 ‘com’으로 끝나는 홈페이지에는 상장을 준비한다는 공지가 있었고 ‘co.kr’로 된 홈페이지는 그런 안내가 없었다. B사 관계자는 본지에 “공식 홈페이지는 www.○○○○.co.kr”이라며 “수사기관에서 사기 가담 여부를 조사했으나 ‘혐의없음’을 인정받았다”고 해명했다. 박씨가 이씨를 속이기 위해 가짜 홈페이지까지 만들었음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박씨가 이씨의 환불 처리 과정을 알고 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A사는 “박씨는 이사로 재직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씨가 A사에 환불을 신청하고 일부의 돈만 돌려받은 사실을 회사 외부 인물인 박씨가 인지하고 접근한 것이다. 이후 A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를 지칭해 고객에게 비상장주식을 권유하는 피해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피해에 유의하라’고 공지했다. A사 관계자는 “(자사 사칭 사기와 관련해) 수사 기관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고 고발을 진행했다”면서도 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박씨가 내 상황을 알고 있었고, B사를 검색했을 때 ‘상장 준비 중’이라는 공지를 보고 투자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 사례와 같은 비상장주식은 담당 부처가 없어 피해자가 고소를 통해 사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마저도 신분을 속이고 접근할 경우 처리가 쉽지 않다. 이씨는 박씨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박씨를 특정할 단서가 없다며 그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수사를 멈춘 상태다.
문제는 피해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B사는 104만주를 개인에게 유통했는데, 박씨가 이씨에게 사기친 물량은 5000주뿐이다. 나머지 수백만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기관이라면 금융감독원이 나서 라이선스를 뺏거나 제재할 수 있지만, 비상장주식 사기는 주로 금융기관의 범죄가 아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도권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감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금감원이 할 수 있는 건 사례를 알리고 투자자에게 조심하라는 경보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서 모니터링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금융당국과 거래소, 증권사와 협업해 대규모 거래가 일어날 경우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이씨처럼 5000주를 한 번에 사도 특이 거래로 잡아낼 주체가 없지만, 사실 시스템만 구축하면 은행권 이상 거래처럼 당국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가 계좌를 갖고 있는 증권사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은 특정 지분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한 번에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라 평균값이란 게 없다”며 “고객 예치에 대해 현재는 이상 거래로 판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감원, 한국거래소, 증권사 모두 비상장주식을 모니터링할 수 없다고 손을 젓는 새 이같은 사기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유사투자자문서비스로 인한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5643건으로 직전 연도보다 79.3% 증가했다. 지난해 1~5월만 하더라도 179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비상장주식 사기를 막기 위한) 바람직한 현상은 금감원이 종합적인 부분을 개입해 주면 좋지만 행정제재가 들어갈 수 없는 게 단점”이라며 “행정기구인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함께 나서 투자자 보호 절차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피해를 일정 부분 막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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