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칼럼]中 글로벌 안보 구상이 일으킨 충격파
중국의 외교 행보가 빨라지고 그 성격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 직후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를 시작으로 18개국의 외국 수반이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주석도 인도네시아·태국 등을 방문하는 등 정상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때리기’ 강도를 높이는 데 대한 중국식 대응전략이자, 단기적으로는 G7 정상회의 등에서 미국의 예봉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조치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만 갈등에 유럽이 휘말리지 말아야 하며 전략적 자율성은 프랑스 외교의 오랜 기조라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중국이 160대의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매하고 명품시장을 열어 화답했다. 이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해 미국에 보란 듯이 화웨이 통신회사를 방문했으며, 양국 교역에서 자국 통화인 위안·헤알로 거래한다고 합의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자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 공을 들인 ‘아메리카 성장 이니셔티브’도 빛이 바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과 중남미 교역은 미국과 중남미 교역보다 약 775억 달러나 많았다.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자 잘못된 방향으로 전속력을 다하고 있다는 미국과 유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시장을 지렛대로 미국의 봉쇄망에 균열을 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행보가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략 구상 속에서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에 불과했으나, 시진핑 3기 체제를 정비한 이후는 대외적으로 글로벌 발전 구상(GDI), 글로벌 안보 구상(GSI), 글로벌 문명 구상(GCI)을 연이어 발표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공세를 약화시키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전략을 병행하면서 제도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이 중에서도 지난해 4월 보아오 포럼 개막 연설에서 시 주석이 처음 선보인 GSI가 주목을 끌고 있다. 즉 유엔헌장 정신에 기초해 새로운 안보관을 제시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화해를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이 구상을 구체화한 ‘GSI 개념문건’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체결한 기존의 안보 관련 합의의 틀은 지켜져야 하고, 전 세계가 당면한 식량,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방역, 우주 안보, 대테러 등의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는 행동계획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상을 정책에 투사하는 과정에서 사례도 축적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데 이어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위한 평화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를 GSI 성과로 간주하고 있으며, 80여 개 국가가 이 구상을 지지해 왔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새로운 외교 공세는 머지않아 아시아와 한반도에서도 투영될 것이다. 이달 초 중국과 싱가포르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기반한 다자무역 체제'와 개방적이고 포용적 세계 경제를 유지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과 원활한 흐름을 확보하는 ‘전방위적인 고품질 전향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나아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오늘의 중국이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점을 다른 나라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해 미국에 실망을 안겨주었다. 중국의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부 류샤오밍 대표도 유럽연합 본부를 방문해 GSI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그 파장은 한반도에도 나타날 것이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이 공고화될수록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주목하지는 않을 것이고,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곧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경제안보가 중요해졌지만, 경제와 안보의 각각 독특한 영역을 섬세하게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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