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반도체 강자 TSMC…삼성과 달리 세계 곳곳 공장 신축

최현준 2023. 4. 18.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냉전의 최전선, 대만을 가다 (상)
‘반도체 냉전’ 파고 넘자....TSMC, 국내외 ‘분산투자’
지난달 30일 대만 신주 과학단지 남쪽에 티에스엠시가 2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신주/최현준 특파원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신주 과학단지. 지난달 30일 찾은 이 단지 남쪽 빈터에서 크레인 10여개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티에스엠시(TSMC)가 새 공장을 짓는 현장이었다. 터의 넓이는 약 55만㎡로, 서울 월드컵경기장(21만6천㎡)의 2.5배에 이른다. 공사장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공사가 시작됐고, 내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말했다. 티에스엠시는 이곳에 짓는 4개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2025년께부터 최첨단 2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의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31일 대만 남단 가오슝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티에스엠시는 10여년 전 운영을 멈춘 가오슝 정유공장 터에 새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둥근 기름 탱크 사이로 크레인 예닐곱개가 분주히 움직이고 전선 등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도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 장스둔(65)은 “오염 때문에 골칫거리였던 정유공장 터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이 세워져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티에스엠시의 ‘과감한 투자’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엔 전체 사업비의 40%가량인 4760억엔(약 4조6950억원)을 보조받아 새 공장(21만㎡)을 짓고 있다. 이곳에선 2024년 말부터 12~28나노의 자동차용 반도체 등을 생산한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하던 투자도 최근 규모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12월 “2024년 생산을 시작하는 첫 공장에 이어 2026년에 가동 예정인 3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하는 두번째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 두 공장에 총 435억달러(약 57조1450억원)를 투자한다. 독일 드레스덴엔 자동차용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을 두고 검토에 들어갔고, 인도·멕시코와도 투자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생산 단가와 전문 인력 등의 문제로 “미국은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리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장중머우 창업자)이라던 티에스엠시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국내와 세계 투자를 동시에 늘리는 티에스엠시의 과감한 확장은 삼성전자의 최근 움직임과 대비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향후 20년 동안 경기도 용인에 300조원을 쏟아붓겠다며 ‘국내 투자’에 훨씬 집중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두 기업의 다른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반도체 산업의 대세로 떠오른 파운드리 분야에서 두 기업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티에스엠시의 파운드리 분야 점유율은 2018년 51.4%에서 2022년 58.5%로 증가했다. 삼성은 같은 기간 15.8%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실적도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에 따라 기복이 심한 반면, 티에스엠시는 꾸준한 성장을 하고 있다. 영업이익을 보면, 2018년 삼성 반도체가 44.5조원을 벌어 티에스엠시(14조원)를 크게 앞섰지만, 2022년에는 티에스엠시가 47.6조원으로 삼성(24조원)에 역전했다.

티에스엠시는 자기 브랜드 없이, 애플·퀄컴·엔비디아 등 전세계 첨단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설계하는 반도체를 대신 생산한다. 대만이 집중해온 주력 산업 형태인 ‘위탁생산 방식’을 반도체에 적용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티에스엠시가 낸 ‘2021년 연간 보고서’를 보면 “올해 535개의 고객을 위해 291개의 다른 기술을 사용해 1만2302개의 다른 제품을 제조했다”고 밝혔다. 자기 브랜드가 있는 삼성은 애플 등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 제품의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30일 대만 룽탄 과학단지에 있는 티에스엠시(TSMC)의 후처리 공장. 티에스엠시는 이 공장 주변 부지에 1나노 반도체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룽탄/최현준 특파원

티에스엠시가 세계로 향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된 2020년이었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노골화되며 반도체는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할 수 없는 ‘전략 물자’가 됐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함께 대만 침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공장을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변화를 언급하며 12월 장 창업자는 “세계화의 흐름은 거의 끝났다. 자유무역 역시 바람 앞의 등불”이라고 말했다.

대만 내부에도 티에스엠시의 ‘탈대만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해외로 공장이 빠져나가면 기술이 유출되고 대만 내 산업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티에스엠시 공장이 사라진 대만을 구하러 올 것이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신주에서 만난 가오위판(29)은 “티에스엠시는 대만을 지켜주는 호국신산(護國神山)이다. 공장이 자꾸 해외로 나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만 내에선 이를 ‘기우’로 보는 의견이 더 많았다. 왕신스 대만 국립정치대학 교수(경제학)는 “티에스엠시의 해외 진출은 종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라며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질적인 탈대만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회사의 핵심인 연구·개발(R&D) 센터가 대만에 있고, 미국·일본 등에 짓는 공장보다 더 최첨단 공장이 신주·가오슝·타이난·룽탄 등에 들어서고 있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 부장(장관)은 지난해 12월 국회 연설에서 “티에스엠시의 연구개발 센터가 대만에 있고 전체 공급망도 이곳에 있다”며 탈대만화 우려를 일축했다.

타이베이·신주·가오슝(대만)/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