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마리화나 합법화 2년… 마약 둑 터졌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4. 1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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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마리화나 거리 르포… 중독성 강한 불법 마약 더 급증
술 사는 것보다 구하기 쉬워, 대낮 도심에도 중독자 활보

지난 16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마리화나(대마초) 공인 판매점 ‘하우징 워크스 칸나비스’. 지난해 12월 주정부 승인을 받아 처음 문을 연 가게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들어가 판매원 J에게 ‘요즘 피곤하고 초조감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J는 “증상이 어떤가. 마약 경험은 있나”라고 간단히 묻더니 “초보자에게 적당한 제품이 있다. 안정과 집중 효과가 크고 순하다”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퍼× 선셋’이란 이름의 궐련 7개들이가 61달러(약 8만원)였다.

뉴욕주가 2021년 3월 ‘기호용 대마초 합법화’ 결정을 한 후 지난해 말부터 허가를 받은 공인 판매점이 시내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합법 마약이 확산하자 다른 불법 마약 거래까지 함께 급증하는 상황이다. 대마초 공인 판매점에선 대마초를 사기 위한 21세 이상 성인 여부를 신분증으로 확인하지만 이런 절차마저 사실상 무너졌다. 뉴욕시에선 술을 사려고 해도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대마초는 각종 불법 거래도 많아 사실상 규제가 술집보다도 느슨하다는 뜻이다

대마초 판매원 J는 마치 식재료를 팔듯이 쉽게 ‘상품’을 설명했다. “기분을 좀 좋게 하고 싶다면 불붙일 필요가 없는 과일 맛 젤리형이나 조미료형도 괜찮아요. 맛도 좋고요.” 가게 내부는 인테리어 소품 가게처럼 밝고 알록달록했다. 대마초의 중독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더니 J는 “커피나 설탕도 중독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대마초나 커피나 비슷하다는 뉘앙스였다.

가게 한쪽에는 종이봉투에 포장한 대마초 제품 50여 점이 줄지어 있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곧 배달되도록 준비해 놓은 것이다. 일요일인데도 손님들은 계속 들락거렸다. 이 가게는 수익을 전액 기부하는 비영리단체로 운영한다. 버는 돈을 에이즈 환자의 주거 개선 등을 위해 기부한다고 내걸고 있다. 사실상 마약 가게이지만 ‘우리는 이 돈을 좋은 일에 쓴다’는 점을 내세워 심리적 장벽을 낮춘 셈이다.

지난해 12월 미 뉴욕시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뉴욕 최초로 합법적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소로 문을 연 '하우징 워크스 칸나비스'의 개장일 모습. 수많은 시민이 개장 몇 시간 전 새벽부터 몰려 물건이 3시간 만에 동났다. 그러나 느슨한 단속에 미승인 가게들이 인근에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값이 몇 배나 비싸고 접근성이 좋지 않은 이런 합법 판매소의 판매 비중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로이터 뉴스1

기자처럼 뭔가 사지 않고 가게를 빠져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가벼운 표정으로 대마초를 사서 나왔다. 이날 취재는 손님을 가장해 진행했다. 한국인은 마약에 있어 한국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미국에서라도 마약을 소지하거나 복용하면 귀국 후 엄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뉴욕엔 예전부터 불법으로 대마초를 소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합법화 이후엔 거리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타임스스퀘어와 소호 등 대표적 관광지에서도 지독한 연기 냄새가 풍긴다. 판매와 소유가 합법화되다 보니 대마초 사용이 밤낮없이 일상화되고 거리에서도 당당하게 피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대마초가 다른 독성 마약 소비를 부추기면서, 맨해튼 워싱턴스퀘어파크와 기차역인 펜스테이션 등 기존의 ‘마약 성지’에서 마약 중독자를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됐다.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거나 사지를 비튼 채 휘청이며 걷고, 괴성을 지르며 시민들을 쫓아다니는 이들이 늘었다. 뉴욕이 대낮에 마약 중독자가 활보해 ‘좀비 랜드’란 오명을 얻은 필라델피아처럼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뉴욕 시내엔 현재 공인 대마초 판매점 60여 곳이 영업 중이다. 일부 가게는 ‘마약과 전쟁을 하지 말고, 사랑이나 하라’는 도발적 문구를 버젓이 내걸고 마약 단속 당국을 비웃는다. 더 큰 문제는 급속히 확산하는 불법 판매다. 합법화한 가게에선 세금을 내야 하지만 불법 판매상에게 사면 탈세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한번 대마초에 맛들인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뉴욕의 무허가 점포 등 대마초 불법 판매소는 1500여 곳으로 추산된다.

현재 미국 50주 가운데 뉴욕을 비롯해 21주에서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화됐다. 사용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판에, 아예 대마초를 양성화해서 세금이라도 걷어보자는 목적이 컸다. 술·담배·매춘·도박에 더해 마약에서까지 죄악세(sin tax)를 걷겠다는 것이다. 뉴욕주는 이웃 뉴저지주가 대마초를 합법화하자 ‘손님’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에 서둘러 합법화에 나섰다. 대마초에 13% 세금을 매겨 1년간 세수 약 4600억원을 더 확보한다는 것이 목표다. 판매상이 늘어날 경우 뉴욕주는 향후 5년간 세수가 총 40조원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큰 씀씀이 탓에 정부 재정 적자가 커지자 지난해부터 마약 사범을 대거 사면하는 등 대마초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며 대마 합법화에 동조하고 있다. 한편에선 마약 중독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성실한 납세자와 미래 세대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조치라는 비난도 나온다.

미 정부는 수십 년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가 계속 늘어 마약 관련 사망자가 한 해 10만명 이상으로 치솟을 정도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다. 대마초는 중독성이 마약 중에선 낮은 편이라고 하지만, 더 센 마약으로 입문하는 ‘게이트웨이(gateway·입구)’ 역할을 하므로 문제가 된다. 대마초 암시장에선 판매상들이 ‘좀비 마약’이라고 하는 펜타닐 등을 섞어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 월가 회사원 등이 마리화나를 택배로 받아 소비한 후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펜타닐 중독 판정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마초를 파는 척하면서 중독성이 훨씬 강한 펜타닐을 몰래 끼워 넣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미 젊은 층의 마약 관련 사망 원인 1위는 현재 펜타닐이지만, 그보다 더 센 신종 합성 마약이 뉴욕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동물성 마취제인 ‘자일라진’을 혼합해 “펜타닐의 효과를 두 배 더 지속시킬 수 있다”고 선전하는 마약이다. 최근 1년 새 미 북동부에서 자일라진 공급이 60% 넘게 늘자, 뉴욕주의회는 지난달 자일라진을 규제 약물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뉴욕 맨해튼 첫 합법 마리화나 판매소인 '하우징 웍스 캐너비스' 매장의 내부 모습. 대마초 화분부터 궐련형, 전자담배형, 젤리, 음식에 뿌려먹는 조미료 형 등 여러 형태의 마리화나를 판매한다. /AP 연합뉴스
뉴욕 시민들이 올 초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인근의 마리화나 흡연자 집결지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 뉴욕에선 마리화나 냄새를 맡지 않고 거리를 지나기가 힘들 정도다. 마리화나 자체는 위험성과 중독성이 낮은 마약으로 분류되지만, 더 센 마약의 입문 역할을 하는 '게이트웨이 마약'이어서 문제가 된다. /로이터 뉴스1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차도에서 촬영된 영상.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펜타닐 중독으로 보이는 남성이 몸을 못가누고 쓰러진다. 뉴욕 등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와 함께 암시장이 커지면서, 펜타닐을 가미한(Fentanyl-laced) 마리화나가 불법 유통돼 일반 마리화나 흡연자가 모르는 새 펜타닐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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