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닮았나… 스노보드 타는 ‘17세 손흥민’

화성/박강현 기자 2023. 4.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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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세계선수권 첫 우승, 한국 雪上종목 새 역사 쓴 이채운
/이태경 기자

한국 스노보드 간판 이채운(17·수리고)은 외모가 축구 스타 손흥민과 닮았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보드 타는 손흥민’으로 통한다. 외모뿐이면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력을 갖췄다. 지난달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세계선수권대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에 출전해 한국 남녀 스키·스노보드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스노보드 세계선수권대회 역사상 남자부 최연소 우승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한국 설상(雪上) 종목 역사를 새로 썼다.

세계챔피언이지만 아직은 고교생. 휴대전화는 힙합과 랩 음악으로 가득 차 있고, 쉬는 날엔 친구들과 공을 찬다. 손흥민 처럼 축구를 할 땐 공격수를 맡는다. 그는 “예전에 머리를 (손흥민처럼) 올렸는데 되게 마음에 들었다”면서 “손흥민 선수가 제게 축구를 가르쳐주고, 저는 스노보드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수줍어했다. 최근 이채운을 경기 화성 자택에서 만났다.

이채운의 이름은 순우리말이다. "집 안을 행복과 복으로 가득 '채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앞으론 무엇으로 가득 채울까.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 경기 화성시 자택에서 세계선수권 때 탄 스노보드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이채운. /이태경 기자

◇”6살 때 시작... 자유로움과 멋에 끌려”

시작은 장난감 보드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랑 (6살 위인) 형이 재미있게 스키장에 다녀오는 것을 보고 ‘나도 데려가달라’고 떼를 썼어요. 그러더니 아버지께서 6살 때쯤 장난감 보드를 사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우연처럼 다가온 스노보드는 이채운에게 필연이었다. 9살 때부터 이미 스키장 상급 코스는 몸풀기로 도는 수준에 이르렀던 그는 “스키나 스케이트는 타 본 적도 없어요. 스노보드의 자유로움과 재미, 멋에 본능적으로 꽂혔던 것 같아요. 딱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10살 때부터 스노보드 선수라는 운명을 선택했다.

스노보드 종목은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 ‘시간’을 다투는 부문이 있고, ‘연기’로 승부를 보는 영역이 있다. 이 중에서도 이채운은 하프파이프를 택하며 ‘연기파’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프파이프에서 선수들은 반원통형 슬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며 점프와 회전 등을 통해 화려한 공중 연기를 펼친다. 심사위원들은 회전, 기술, 난도에 따라 공중 연기를 채점해 순위를 정한다. “스피드를 쫓기보다 공중에 뜨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하얀 풍경을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종목이랄까요. 그 순간에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프리스타일’로 나만의 연기를 펼치는 게 짜릿하더라고요.”

역시 스노보드 선수 체질일까. 모자와 고글을 착용한 이채운의 포즈와 표정은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채운은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고도 대회가 끝나자마자 훈련을 했다.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딸 줄 모르고 훈련을 미리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이태경 기자

◇”’스노보드하면 이채운’ 남기겠다”

즐기면서 노력을 보태니 성장세는 무서웠다. 많게는 하루에 80번 가까이 하프파이프 연습장 계단을 오르내린 이채운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나서며 경기 감각을 쌓았다. 당시 한국 선수 중에선 최연소였고, 전 세계 참가 선수를 통틀어서도 둘째로 어린 유망주였다.

최고의 무대를 경험하며 급성장한 이채운은 지난해 국제스키연맹(FIS) 주니어 세계선수권 등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엔 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2개 대회 연속 4위에 올라 경쟁력을 입증하더니 세계선수권에선 일을 냈다. 이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인 작년 7월엔 미국에서 연습하는 도중 착지 과정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두 달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실 저희도 착지할 때는 (보는 사람들이 우려하듯) 두렵긴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당한 부상은 너무 많아서 세기도 힘들어요. 근데 저는 이런 건 빨리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즐기면서 타니까요.”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한 이채운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2026년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다. 3년 뒤 20세가 되는 그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이번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듯이. /이태경 기자

땀을 흘리며 터득한 기술 중 이채운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은 ‘프런트사이드 1440도’다.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로 무려 4바퀴나 공중에서 돈다. “언제든지 성공률 100%”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에 가장 보완해야 하는 기술론 ‘백사이드 1260도’를 꼽았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처음 성공시켰는데, 덕분에 우승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뒷이야기를 소개해줬다. 스스로 “2022년은 올림피언(Olympian)으로 경험하는 해였다면, 2023년은 세계 챔피언이 된 순간”으로 규정하는 이채운이 가장 우러러보는 운동선수는 높이뛰기 우상혁(27) 선수였다. “떨지 않고 진짜 운동을 즐기는 게 보이잖아요. 그런 점을 닮고 싶어요.”

이채운은 지난해 12월부터 롯데그룹 후원을 통해 훈련비와 영어 교육을 지원받고 있다. 덕분에 영어 인터뷰도 두렵지 않다. 그는 “축구하면 손흥민을 떠올리듯이, ‘스노보드하면 이채운이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화성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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