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데낄라 원샷’을 허하라
문학작품을 편집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그 남자는 데낄라를 원샷하고 낄낄 웃어젖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데낄라’와 ‘원샷’이다. 우선 원샷의 올바른 표기법은 ‘원숏’이겠으나, 그마저도 콩글리시라 규범표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남자에게 원숏을 시킬지 원샷을 시킬지 고민하다가, 슬며시 ‘단숨에 비우고’로 고친다.
이제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우리가 흔히 ‘데낄라’라고 부르는 술의 올바른 표기법은 ‘테킬라’이다. 아무리 반복해 들어봐도 ‘낄’로 들리지만 정부의 외래어표기법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된소리, 즉 쌍자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경우에 ‘낄낄’ 웃음소리와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류를 감수하거나, 아니면 테킬라를 마시고 킬킬 웃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표기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세종대왕님이 창제한 한글에는 엄연히 쌍자음이 있고, 다양한 언어를 소리 그대로 표기할 능력도 갖추고 있는데 왜 쓰면 ‘잘못’이 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에 대한 국어원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된소리를 쓰면 원음에 좀 더 가까워질 수야 있겠지만 어차피 완벽하게 똑같기는 힘들고, 기존에 통용되던 단어를 바꿔야 하니 사회적·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웬걸, 2004년 태국의 도시 ‘푸껫’이 정식 표기로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동남아 국가에는 된소리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동남아가 그 무렵 지도상에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고 태국어가 스페인어보다 더 된소리에 가까운 것도 아닌데 왜 동남아만 허용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최근 터키를 ‘튀르키예’로, 키예프를 ‘키이우’로 하루아침에 바꿀 때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한 것인지,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는지 제대로 설명된 바가 없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갈수록 알기가 힘들다. 그러니 힘없는 출판편집자는 이러는 수밖에. “그 남자는 위스키를 단숨에 비우고 키키 웃어젖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러·북 군사협력 본질은 권력 유지 위한 지도자간 결탁"
- [단독]"토건세력 특혜 설계자는 국민의힘" 이재명 발언, 유죄 근거 됐다
- [단독] 김문기가 딸에게 보낸 ‘출장 동영상’, 이재명 유죄 증거 됐다
- 국어·수학 쉬워 1등급 컷 올라... 탐구 영역이 당락 가를 듯
- 트럼프 도피? 4년 4억에 가능... 美크루즈사가 내놓은 초장기 패키지
- [만물상] 대통령과 골프
- WHO "세계 당뇨 환자 8억명, 32년만에 4배 됐다”
- 제주 서귀포 해상 어선 전복돼 1명 실종·3명 구조... 해경, 실종자 수색
- “계기판 어디에? 핸들 작아”... 이혜원, 사이버 트럭 시승해보니
- 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