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
1831년 케임브리지대학 신학부를 막 졸업한 22살의 찰스 다윈은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과 자원 탐사 임무를 맡은 군함 비글호에 승선했다. 신학보단 생물학과 지질학을 좋아하던 다윈은 아메리카와 남태평양에 있는 다양한 생물에 관심이 많았다. 몇 달 후 브라질에 도착했는데 호수와 하천에 사는 곤충과 조개류의 종류가 영국과 비슷한 데 반해 부근의 동물들은 무척이나 달라서 놀랐다. 호수에 갇힌 생물은 육지에 둘러싸인채 격리돼 있어 대륙 간 종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멀리 떨어진 유럽과 비교해 다르지 않았다. 눈에 띄게 특이한 건 주변에 서식하는 육지 동물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에 도착한 다윈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해안가 암석 사이에서 멸종된 대형 포유류의 화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먼 옛날 시베리아에서 베링해를 건너온 이주민의 사냥으로 멸종된 거대동물들의 뼈였다. 마스토돈, 메가테리움, 톡소돈으로 이름 붙은 화석이다. 마스토돈은 코끼리와 유사한 초식동물이었고 메가테리움은 나무를 기어 다니는 나무늘보와 비슷했으며 톡소돈은 코뿔소 같은 큰 몸집에 발굽을 가지고 있었다. 다윈은 우루과이에서 만난 농부에게 18펜스를 주고 화석을 수집했다.
구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남미 포유류 화석은 너무나 특별해 다윈의 가슴을 뛰게 했다. 다시 배를 타고 에콰도르에서 약 1000㎞ 떨어진 19개의 화산섬 갈라파고스제도에 상륙했다. 다윈은 핀치새들의 부리가 섬의 지형과 환경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핀치새는 남미 연안의 특별한 섬에만 서식하는데 부리 모양이 씨앗이나 식물 같은 먹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낯선 장소, 낯선 생물을 통해 영감을 얻은 다윈은 종이 긴 시간을 지나 서서히 바뀔 수 있다는 자연선택 이론을 도출했다. 1859년 출간된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은 자연선택의 증거를 제시한 거대논증이다. 생존투쟁에서 약간의 유리한 점을 가지는 변이를 통해 자연선택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서서히 대물림되면서 변이가 축적되고 보존된다는 이론이다.
다윈은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박물학자(naturalist)들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했다. 이 말은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종의 진화는 도약하듯 갑작스럽고 엄청난 변화가 아니라 미미하지만, 생존에 이로운 잇따른 변이의 축적으로 일어난다. 종의 변이와 다양성은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생물의 종에 변화가 쌓여 변종이 생기고 아종을 거쳐 확실히 구분되는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자연선택의 현대적인 해석은 돌연변이가 누적되면서 서서히 종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자가 전달될 때 복제과정에서 일어나는 DNA 염기서열의 미세한 변화와 유전자가 섞이면서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교차(crossing over)가 일어난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오랜 시간을 걸쳐 생물 중 극소수에게만 작용한다고 말했다. 변이를 통해 생존투쟁에서 밀린 종은 멸절하고 우세한 세력을 형성한 종은 변화를 거듭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의 무수한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다.
신대륙은 새로운 과학을 여는 원동력이었다. 구대륙을 떠나 신대륙에서 발견한 신비한 화석과 특별한 생물은 종의 기원을 밝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거대한 미지의 대륙에는 기존 관념과 틀을 깨는 새로운 증거들이 가득했다. 현대 생물학을 창시한 다윈의 선구적인 업적은 종교의 거센 비판을 이겨내고 정설이 되었다. 최초의 단순한 시작에서 숱한 변이를 통해 경이롭고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돼 왔다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는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숱한 논쟁과 검증을 거쳐 ‘종의 기원’은 탁월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그로 인해 다윈은 영국 성공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물리학의 거인 아이작 뉴턴 곁에 묻혔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적인 개념이다. 생물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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