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재탕 또 재탕… 스마트폰 중독 대책, 산으로 가나

곽수근 국제부 차장 2023. 4.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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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부모 동의 의무화한 佛
벌금 부모에게 물리는 대만
한국은 실효성 없는 정책만
과감한 정책으로 변화 이끌어야
/일러스트=이철원

신체 부위 중에서 최근 10여 년 새 가장 바빠진 곳을 꼽는다면, 엄지손가락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기상 직후부터 취침 직전까지 거의 하루 종일 엄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 좌우로 밀어대는 시대가 낳은 결과다.

며칠 전 영국에서는 엄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연구 결과가 더타임스 등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영국인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움직이는 스크롤(scroll) 시간을 추정해 거리로 환산해보니, 일주일 평균 96m로 한 달이면 에펠탑(330m)보다 높은 396m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연구 결과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중독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매년 3월 ‘스마트폰 과(過)의존 실태 조사’를 공개하는데, 지난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만 3~69세 스마트폰 이용자의 23.6%가 과의존 위험군으로 집계됐다. 특히 청소년은 이 비율이 40%에 달하고, 만 3~9세도 26.7%로 높은 편이다.

이처럼 어린이·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우려가 크지만, 스마트폰을 손에서 못 놓는 부모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미 상당수 부모들이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감을 느끼거나, 손에서 떨어진 상태로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수시로 만지작거리는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에 빠졌다는 얘기다. 스마트폰 분리 불안으로 사실상 중독에 빠진 부모가 자녀의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을 지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발표된 국내외 연구 결과는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마약 중독과 비슷한 뇌의 변화를 겪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도파민 과다 분비가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관련된 안와전두피질 이상을 초래해 마약 중독자처럼 충동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디지털 마약’과 다름없다고 하는 이유다. 안구건조증·방아쇠 손가락·일자목 증후군 등 스마트폰 관련 6대 질병의 국내 환자 수가 586만명(2021년 기준), 건강보험이 적용된 의료비가 5871억원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손실도 크다.

15세 미만 사용자는 부모 동의를 받아야만 소셜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프랑스를 비롯, 스마트폰 중독에 정책적으로 적극 대응하는 국가는 늘어나는 추세다. 대만은 2~18세 자녀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벌금을 부모에게 부과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미국도 30여 주가 2세 이하 스마트폰 이용을 제한하고 전국 학부모들은 8학년(중2)이 될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시민들./조선일보 DB

이에 비하면 우리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서는 절박감을 찾기가 어렵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제5차 스마트폰·인터넷 과의존 예방 및 해소 기본계획’(2022~2024년)은 3년 전 문재인 정부 때의 제4차 계획에 비해 과감하고 전향적인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간판으로 내세우는 부모 교육도 연간 6만명으로 늘린다는 것인데, 587만명에 달하는 전국 유·초·중·고교생의 부모 교육 규모로는 턱없이 적다는 지적이다.

2010년에 발표한 제1차 대책을 시작으로 지난해 5차까지 정부가 12년간 스마트폰 중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중복 재탕 정책이 여전하고 스마트폰 과의존 상황은 악화된 게 우리 현실이다. 스마트폰 스크롤을 거리로 환산한 영국 연구 결과를 우리 대책에 대입한다면,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에펠탑을 쌓아올리는 것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반대를 무릅쓰고 적극적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변화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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