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75] 폴 리비어의 질주
1775년 4월 18일 자정 미국 보스턴의 은 세공사였던 폴 리비어가 말에 올라타 한 손에 등불을 든 채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이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 독립파의 민병대 무기고를 습격한다는 전언을 들은 그가 보스턴에서 렉싱턴까지 32km를 한 시간 만에 내달렸다. 다음 날 렉싱턴에서 전투가 시작됐고 리비어의 경고로 준비 태세를 갖춘 민병대는 영국군을 보스턴으로 밀어냈다. 바로 이 렉싱턴-콩코드 전투가 미국 독립 전쟁의 시작이다.
리비어의 영웅담은 시인 롱펠로가 1860년에 발표한 시 ‘폴 리비어의 질주’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롱펠로는 미국이 남북으로 나뉘어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시민 한 사람의 용기가 나라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리비어의 질주를 빌려 노래했다.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1891~1942) 또한 어린 시절부터 듣고 읊었던 롱펠로의 시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적한 숲속 마을, 짙은 어둠을 뚫고 리비어가 달린다. 장난감 같은 집들 가운데 구불구불 뻗어나간 길을 지날 때 잠에서 깬 주민은 전등을 켠 듯 창을 환히 밝히고 잠옷 바람에 놀라 뛰쳐나왔다. 이 모두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린 우드의 그림은 시를 읽던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펼쳐진 동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다. 화가가 되기 전 금속 공방에서 은 세공을 배운 우드인지라, 은 세공사였던 리비어가 나라를 구한 이야기에 더욱 이끌렸을지 모른다.
우드는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등 당대 유행하던 양식을 접했지만 오히려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어린이 같은 천진한 그림으로 미국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우드의 지방주의 양식은 미술에서 미국의 독립을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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