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김일성과 함박꽃나무

기자 2023. 4.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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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 때문일까, 올봄 날씨가 널뛰기이다. 한여름처럼 덥다가도, 느닷없이 추워지니 사람도, 꽃도 혼란스럽다. 서둘러 핀 매화와 벚꽃, 개나리를 뒤이어 이제 목련의 계절이건만, 꽃망울이 큰 목련 종류는 삐죽이 꽃잎을 내밀었다가 냉온탕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다. 함박꽃나무는 다행히 다른 목련보다 늦게 피는 특성 때문에 올봄 추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목련 종류는 목련, 백목련, 자목련, 일본목련 등과 같이 이름에 목련이 들어가지만, 함박꽃나무는 그 이름만으로는 목련류인지 알 수 없다.

다른 목련들이 정원을 빛내는 꽃이라면 함박꽃나무는 산속 계곡을 찾는 이에게 뜻밖의 선물이다. 늦봄에 살짝 고개 숙인 듯이 피는 꽃은 마치 수줍은 듯, 다소곳하고 함초롬한 표정이다. 게다가 진녹색의 풍성한 잎 사이로 순백의 꽃잎과 진홍색의 수술이 서로 대비되며 보여주는 청량함 때문에 목련 중에 가장 마음이 끌린다. 창덕궁과 창경궁에도 한두 그루씩 자라고 있어 만날 때마다 반갑다. 이런 취향과 표현도 예전에는 조심스러웠다. 함박꽃나무가 북한의 국화인 데다가, 이를 정한 사람이 김일성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木蘭)이라 부른다. 평양에서 발행된 <조선식물지>에는 함박꽃나무가 북한의 국화가 된 내력이 적혀 있다. “목란꽃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향기롭고 열매도 맺고 생활력도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목란꽃을 우리나라의 국화로 정하고자 하였습니다”라는 김일성의 교시가 식물도감에 실려 있다. 원래 북한에서도 함박꽃나무라고 불렸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꽃을 난이라고 하는데, 나무에 피는 난이라는 뜻에서 함박꽃나무라고 하지 말고 목란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김일성 지시 때문에 목란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평양시 중앙식물원에서 자라는 함박꽃나무는 1964년 김일성이 직접 보고 ‘목란은 꽃이 희고 정갈하며, 건장한 맛이 있어 조선 인민의 슬기로운 기상과 같다’며 각별한 애정을 보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북한 지폐나 기념우표에도 함박꽃나무가 그려져 있으니, 그 위상을 알 만하다.

30~40년 전만 해도 남한 식물학자들 사이에서 함박꽃나무가 북한의 국화라는 것에 대해 쉬쉬했다. 행여나 불온세력으로 오해받거나 구설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서라,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 사람은 미워해도, 꽃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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