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상어 공격’과 대통령 지지율
유권자들 합리성보다 진영 논리 빠지기 쉬워
유의미한 결과 도출 힘든 여론조사 자제해야
저자들은 “현실론자를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Realists)”라는 2016년 저서에서 뉴저지주의 상어 공격이 19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었음을 보였다. 유권자들이 자연재해 등 대통령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안들도 대통령 평가와 연결시킴을 계량적으로 보인 것이다. 저자들은 일반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이 합리성보다 집단 정체성 내지는 ‘진영 논리’에 더 지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최근 10년간 미국 정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저술이며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물론 모델 수정 후 데이터를 재분석하면 저자들의 ‘상어 공격 효과’가 상당히 약해진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다른 사례들도 제시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문제는 ‘대중’의 비합리성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이상주의적 기대’라고 결론 내린다. 일반 유권자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정책 사안들을 숙고하여 의견을 형성하고 이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민주주의론’이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난주 ‘양곡관리법’ 관련 설문조사 문항을 두고 한국갤럽과 정부 관계자들이 신경전을 벌였다. 대다수 응답자가 ‘양곡관리법’의 세부 내용을 전혀 모를 것이 뻔하다 보니 한국갤럽이 설문 문항에 관련 설명을 제시했는데 실제 법 개정안과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된 양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법안 내용과 차이가 있었다. 솔직히 농/임/축산 분야의 문외한인 필자는 한국갤럽의 문항이 실제 법안 내용과 다르다는 것 정도 외에는 그 차이가 가진 함의에 대한 정부의 설명도 이해가 안 된다.
사실 ‘현실론적 민주주의자’ 시각에서 보면 애초에 이런 설문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양곡관리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응답자가 몇이나 될까. 실제로 응답자 누구도 질문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그 방증이다. 전형적으로 설문연구의 권위자 존 크로스닉 스탠퍼드대 교수가 얘기한 ‘충족화 전략(satisficing)’이 적용될 설문이다. 대다수의 응답자는 의견이 없는 사안에 대해 의견 제시를 요구받으면 그 자리에서 ‘적당한’ 의견을 생성해 답한다. 이렇게 수집된 ‘찬성’과 ‘반대’의 분포가 의미 있는 ‘민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는 법 개정안에 대한 설명 오류를 문제 삼았지만 사실 ‘현실론적 민주주의자’ 시각에서 보면 더 큰 문제는 응답 선택지였다. 어차피 설명 자체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윌리엄 저코비의 정책 프레이밍 연구에 따르면 일반 유권자들은 정부보다 다른 일반 유권자들에 대해 훨씬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기 때문에 ‘수혜자’를 강조하는 프레임이 정부 예산 지출을 유도하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응답 선택지가 “쌀값 안정화, 농가 소득 보장 위해 찬성”과 “쌀 공급 과잉, 정부 재정 부담 늘어 반대”라고 주어졌을 때 무관심한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반면 에이킨과 바텔스 교수의 예측처럼 이 사안도 ‘진영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 지지자 81%가 찬성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39%만이 찬성했다. 참고로 ‘농/임/어업’ 종사자는 표본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조사업체는 응답자 대다수가 유의미한 의견이 없으나 정치적 이유로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에 대한 여론 조사를 자제해야 한다. 한국갤럽을 설립한 고 박무익 회장은 “한국의 월터 리프먼”으로 불리던 한국 여론조사의 창시자로서 학계에서도 큰 존경을 받으셨다. 고인께서 별세하시기 몇 해 전 필자를 회사로 부르셔서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새로운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 물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전통을 가진 한국갤럽은 지난 대선에서도 무응답을 보정하여 가장 정확한 예측 결과를 내놓은 실력파다. 조악한 자동응답방식(ARS)의 조사가 난무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국내 여론조사 업계에서 ‘민심’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어야 한다.
정부도 ‘현실론적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이킨과 바텔스 교수의 주장대로 ‘여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보다 나은 대안은 없기에 억울함 또한 정부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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