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외출했을 뿐이라고”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2023. 4.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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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미하엘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독일 에를랑겐대학교의 동양어학 교수였다.

"네 엄마가 문으로 들어올 때 내가 고개를 돌려 보면, 엄마의 시선은 먼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네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던 그곳으로 향하는구나." "자주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외출했을 뿐이라고, 곧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날씨가 좋지 않은가. 아아, 당황하지 말자꾸나. 아이들은 멀리 산책을 갔을 뿐이지." 뤼케르트는 깊은 아픔이 담긴 이 시들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원고 뭉치로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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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잃은 애끊는 아픔을 형상화한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작사가 뤼케르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요한 미하엘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독일 에를랑겐대학교의 동양어학 교수였다. 그가 45세 때였던 1833년 불운이 찾아왔다. 그해와 다음 해에 걸쳐 두 자녀를 잇달아 성홍열로 잃은 것이다. 그는 두 아이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428편이나 되는 시에 담았다. 일부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네 엄마가 문으로 들어올 때 내가 고개를 돌려 보면, 엄마의 시선은 먼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네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던 그곳으로 향하는구나.”

“자주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외출했을 뿐이라고, 곧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날씨가 좋지 않은가. 아아, 당황하지 말자꾸나. 아이들은 멀리 산책을 갔을 뿐이지.”

뤼케르트는 깊은 아픔이 담긴 이 시들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원고 뭉치로 내버려두었다. 가끔 꺼내 혼자만 읽었을 것이다. 이 시들은 그가 죽고 5년 뒤인 1871년에야 책으로 묶여 출판됐다.

30년이 지나 1901년, 이 시집이 41세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마음을 울렸다. 어린 가족의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은 그에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보건위생 수칙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세기, 그의 형제 중 여덟 명이 어린 시절 목숨을 잃었다. 유럽 음악계 최고의 지위인 빈 궁정오페라 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말러는 시집에서 세 편을 골라 곡을 붙였다. 이듬해 빈 최고의 재원으로 꼽히던 알마와 결혼하면서 이 노래들은 잠시 잊혔다.

말러가 이 시집에서 두 편을 더 골라 곡을 쓴 일이 아내 알마를 화나게 한 것은 당연했다. 1904년, 두 번째 딸을 낳고 불과 2주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마는 ‘남편이 나쁜 운명을 유혹해 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3년 뒤인 1907년, 그의 첫딸인 마리아 안나는 뤼케르트의 자녀들과 같은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다. 다섯 곡으로 짜인 말러의 가곡집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가 빈에서 초연되고 2년 뒤였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한국 초연은 1974년 4월 16일 완공되고 갓 1년이 안 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이뤄졌다. 홍연택 지휘 국립교향악단의 124회 정기연주회였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메조소프라노 이정희가 솔로를 맡았다. 이날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도 함께 초연됐다.

말러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보다 10년 앞서 1895년 발표한 ‘부활 교향곡’에는 오케스트라 외에 합창단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솔로가 등장한다. 한국 초연의 솔로는 이정희와 소프라노 김복희가 맡았다. 말러가 직접 쓴 5악장 피날레 부문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얻어낸 날개를 달고 나 날아오르리라,/ 나는 죽노라, 살기 위하여!/ 부활하리라, 부활하리라/ 내 심장이여, 한순간에!/ 네가 울린 고동이/신에게 너를 데려가리라!”

기자는 신비주의적인 일화들을 중요시하지 않는 편이다. 예사롭지 않은 우연이 겹치면 ‘워낙 드문 일이니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라며 넘기곤 한다. 그러나 ‘부활 교향곡’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한국에서 초연되고 딱 40년 되는 날, 바로 그날 우리 사회가 250명이나 되는 꽃다운 나이의 고등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의 귀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등골에 차가운 기운이 타고 흘렀다.

내년 4월 16일은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부활 교향곡’이 한국에서 초연되고 50년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1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16일 두 곡을 들었다. 내년 4월 16일에도 종일 두 곡을 들을 것이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떠난 희생자들을 기리는, 나의 보잘것없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런 날씨, 이런 폭풍 속이라면/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아이들이 병들 것을 걱정했었지만/이제 그런 불안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있는 집에서처럼 쉬고 있을 것이다./어떤 폭풍우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하고,/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호하시리라.”(‘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5곡 ‘이런 날씨라면’)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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