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주권침해 따져물을판에 언론에 대고 국익 타령이라니

미디어오늘 2023. 4.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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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397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귀를 의심했다. 미국에서 기밀문건 유출 용의자가 현지에서 체포된 것과 관련해 지난 14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 질의를 받고 한 말 때문이다.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이렇게 정쟁으로 (만들고)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말이 더욱 가관이다. 그는 “언론의 자유라는 게 늘 국익과 일치하지 않지만 만약 국익과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본다”고 말했다.

현재 유출된 기밀문건에 따르면 우리 국가안보실 고위 관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스일 탄약을 미국에 우회적으로 공급하는 대화 내용을 미국 정보기관이 도청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해 따지는 보도는 국익에 먼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말이다.

언론자유 상위개념에 해당한다고 강변한 그 국익조차도 전혀 국익과 상관없다. 우리 외교안보라인 정보가 타국의 도감청 행위에 따라 넘어간 경위와 함께 명백한 주권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정부가 당당한 대응에 나서고 있느냐라고 묻는 질문에 엉뚱한 국익 타령이다. 오히려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은 도청을 한 미국 정부에 자칫 면죄부를 주고 우리가 당한 피해를 감춰 국익 훼손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국익과 언론자유 문제를 결부시킨 것부터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이 정권엔 없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4월8일(현지시각) 온라인 기사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도감청한 내용의 유출된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뉴욕타임스 사이트 갈무리

기밀문건 유출 사태를 최초 공론화한 것은 뉴욕타임스이다. 만약 미국 정부 관료가 해당 매체에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훈수를 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되물어보자. 뉴욕타임스가 자국 정보기관의 도청과 기밀문건 유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시민의 알권리에 해당하고 그 공공의 이익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임을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인가.

지난해 10월28일 미국 정부는 언론사(史)에 빛날 규정을 하나 만들었다. 당시 매릭 갤런드 미 법무부장관은 성명을 내어 연방수사당국이 언론인 이메일을 포함한 통신 기록 조회, 취재 메모 입수, 증언 확보 등을 위한 영장이나 소환장, 법원 명령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한다고 했다.

미 법무부 설명에 따르면 해당 규정은 “기밀 정보를 포함해 언론인이 공공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 추적 또는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정리한 언론인의 취재 행위를 전면 보장하는 것이다. 갤런드 장관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은 민주주의 수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이번 규정은 취재 보도 행위를 불합리하게 훼손할 수 있는 법적 조치로부터 언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대통령실 관계자의 국익 운운 발언과 얼마나 상반된 내용인가. 뉴욕타임스의 자국 기밀문건 유출 사태 보도에서 국익이라는 게 전혀 끼어들 틈이 없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언론도 주권침해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난 2013년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라 미 국가보안국이 한국을 포함한 주미대사관 38곳과 유럽을 도청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와 비교해보자. 당시 언론은 미국의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엄중히 항의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를테면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미국은 도감청 의혹을 사실상 시인하면서도 이를 정상적 첩보활동이라고 우기고 있다”며 “그런 말은 첩보활동의 실상이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지 수면 위로 드러난 다음에는 변명이 될 뿐이다. 외국 정상의 휴대전화를 엿듣고 공관을 도청하는 행위는 명백한 주권침해이고, 프리이버시를 무시한 범죄행위다… 동맹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2일 오전 미국 덜레스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고 고압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KBS 뉴스광장 영상 갈무리

반면 현재 벌어진 도청 문제에 대해선 “이번 기밀 유출 사태는 미국과 동맹국들을 갈라놓으려 러시아가 획책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섣부른 대응으로 이런 이간질에 말려서는 안 될 일이다”(11일 서울신문 사설)이라거나 “미국 감청에 흥분할 게 아니라 우리도 조 바이든 정부의 내밀한 기류까지 어떻게든 확보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그게 현대 국가의 정보 외교이고 생존 철칙이다”(10일 한국경제 사설)는 식의 보도가 나온다. 2013년 도청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보수집은 모든 국가들이 다 하는 일로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해명과 현재 우리 일부 언론 보도와 뭐가 다른가.

국익을 훼손하는 것은 정치권 공방 속에 가둬 주권침해 행위를 희석시키고 책임을 지우려는 것에 있다. 정부에 국익 타령은 하지 마라고 일침을 가하는 게 진정 우리 국익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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