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방송가, 일반인 출연자 '생기부 검증' 추진...실효성 있나
비연예인 출연자 과거사 논란에 고심 앓는 방송가
"오죽하면 생활기록부까지…100% 검증은 어려워" 해석도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빈도가 늘면서 일반인 출연자들이 TV 속 주인공으로 활약 중인 가운데, 방송 중 발생하고 있는 일부 출연자들의 예상치 못한 과거사 논란이 해당 프로그램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제작진은 논란 직후 해당 출연자를 중도 하차시키거나 통편집, 사과문 발표 등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 있으나, 사후 대책이 아닌 방송 제작 전부터 출연자의 과거사를 파악하기 위해 강도 높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중 하나가 생활기록부 열람을 통한 검증이다. 출연자의 학창 시절 행동에 문제가 있었거나 학폭, 성추행, 데이트 폭력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혐의나 징계받은 조치가 생활기록부에 기록돼 있다면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다.
비연예인 출연자가 출연해 시즌제로 거듭날 만큼 인기 IP로 자리 잡은 '하트시그널', '강철부대' 등을 만든 채널A 제작본부장은 최근 성수동 소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출연자의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진민 채널A 본부장은 최근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각종 사생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에 "저희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제작하는 모든 방송사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싶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섭외단계에서) 하지 않았던 과정을 하나 거치고 있다. 출연자분들의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받는다. 물론 이 부분에 동의하신 분들이 출연한다. 특이사항이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고 자기검열도 되리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출연자의 생활기록부 검증은 방송사의 특단의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하트시그널' '강철부대' 등 경우 출연자들이 음주운전, 학폭, 성추행 등 혐의로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채널A 측은 17일 <더팩트>와 통화에서도 "출연자 동의 하에 생활기록부 열람 과정을 거친다"며 제작본부의 방침을 지키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생활기록부를 열람하는 것만으로 출연자의 인성이나 과거사 논란을 예방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생활기록부 자체에 인성 검증 등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학창 시절 문제를 일으켰더라도 생활기록부 열람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일생을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20대 이후의 삶은 생활기록부에 더 이상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크다"고 해석했다.
2013년 개정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퇴학을 제외한 학폭 가해 조치사항은 졸업 직후 또는 졸업 후 2년이 지나면 삭제가 가능하다. 학폭 피해자는 졸업 후에도 평생 고통을 받고 살아가지만, 가해자는 졸업하면 자신의 '낙인'을 스스로 삭제할 수 있는 셈이다. 또 2019년부터는 경미한 폭력으로 받은 조치사항(1, 4, 5호)는 아예 기록되지 않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생활기록부와 별도로 학교에서 작성되는 학폭 가해 학생 조치사항 관리대장은 보존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폭을 다룬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방영한 넷플릭스도 출연자의 과거 검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생활기록부 검증 외에도 흥미로운 대책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정신과 의사를 통한 마인드 체크나 출연자 동의를 받고 SNS를 훑어보는 검증, 또 상호 합의 후 책임 계약서를 작성해 추후 과거사 논란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출연자 본인이 지게 하는 행위 등이다.
유기환 넷플릭스 예능 교양 콘텐츠 총괄 디렉터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넷플릭스 콘텐츠에서도 학폭 논란, 결승 장비 결함 등의 지적이 나왔다. 당연한 지적이고, 넷플릭스도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출연자 검증방식에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기존 방송보다 훨씬 더 많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다르나, 생활기록부를 받아보거나 정신과 의사를 통해 마인드를 체크하고, 미국처럼 본인의 동의를 얻어서 SNS를 훑어보는 과정도 있다. 결정적으로 본인과 인터뷰를 통해 과거에 대해 질문하고 거짓으로 말하면 본인이 책임을 지게 하는 계약도 있다. 이런 과정을 다 거쳐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 꾸준하게 해결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방송가는 생활기록부 열람을 통해 일반인 출연자들의 과거사를 둘러싼 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앞서 MBN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의 출연자 황영웅과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피크타임'의 출연자 김현재 그리고 가람, 넷플릭스 '피지컬: 100' 출연자 H씨 등이 제작진으로부터 사생활 검증 과정을 거쳤지만, 방송 이후 불미스러운 과거가 드러나면서 결국 논란이된 경우다.
'한 종편 방송사에서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는 A씨는 <더팩트>에 "출연자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100% 검증은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그렇지만, 오죽하면 생활기록부 열람까지 고려 했겠나. 그만큼 제작진이 출연자 검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시청자에게 심어주기 위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인 출연자가 중심이 되는 방송을 제작할 때 출연자의 스토리나 잠재적 스타성 여부가 섭외 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다만 해당 출연자의 과거사 논란이 프로그램 전체 이미지를 실추하게 되는 형태로 이어진다면 제작진 입장에서도 큰 타격이기 때문에 검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방송에 안성맞춤인 출연자를 발견하더라도 제작진은 출연자 섭외나 방송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출연자가 동의를 한다면 생활기록부라도 열람해볼 수 있으나, 이마저도 없으면 사실상 출연자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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